[盧대통령 취임1년 주류가 바뀐다]<2>관료사회

  • 입력 2004년 2월 23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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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에 자리 잡았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당시 정권 핵심인사들은 현 정부의 첫 조각(組閣) 방향을 놓고 오랫동안 격론을 벌였다. 난상토론 끝에 내린 결론은 장차관은 물론 1급 공직자와 핵심 국장급까지 한꺼번에 바꿔야만 한다는 쪽이었다. 이는 이후 현 정부의 ‘인사개혁 로드맵’으로 정리돼 공직사회를 변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서열 파괴, 위에서 아래로=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첫 내각구성에서부터 서열파괴 인사의 신호탄을 올렸다.

외교통상부의 수장에 국장급과 연배가 비슷한 윤영관(尹永寬) 서울대 교수가 기용됐고, 법무부 장관에는 판사출신이자 부장검사급(사시 23회)인 여성 변호사 강금실(康錦實) 장관이 파격적으로 임명됐다. 경남 남해군수 출신인 김두관(金斗官) 전 행정자치부 장관, 영화감독 출신인 이창동(李滄東) 문화관광부 장관, 삼성전자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진대제(陳大濟) 정보통신부 장관의 등용 역시 관료사회에 충격파를 던졌다.

후속인사에서 각 부처의 1급 공직자들도 다면평가를 거쳐 대폭 물갈이가 이뤄졌다. 올해 초에는 각 부처의 핵심 국장들의 자리를 맞바꾸는 ‘고위공무원단’ 제도까지 시행됐다. 관료사회의 판갈이가 정무직이 아닌 2, 3급 공무원에까지 미치기 시작한 셈이다.

여기에다 고시 출신 비율을 줄이고, 지방대 및 여성 출신의 등용을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한 인사개혁 로드맵이 본격 시행에 들어가면 중하위직 공무원까지 인사개혁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이 시도의 첫 단계는 ‘성공 반, 실패 반’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미 지난해 말 개각과 올해 1월 부분 개각을 통해 이헌재(李憲宰) 경제부총리, 안병영(安秉永) 교육부총리,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장관, 오명(吳明) 과학기술부장관 등 전문분야에 정통관료 출신을 기용하는 등 지난 1년의 ‘인사실험’을 보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핵심자리 뒤섞기=올 들어 노 대통령이 공직사회 개혁에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고위공무원단’ 제도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22개 직위를 대상으로 한 고위 공무원단 인재풀은 부처이기주의를 깬다는 측면도 있지만, 일부 관료들이 장차관을 따돌리면서 정책을 자기 입맛대로 쥐락펴락하고 있는 현상 타파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장차관을 개혁적인 인사로 갖다놓아도 중간 허리 이상의 핵심간부들이 호응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은 최근 교육관료들이 현정부의 교육개혁에 반발하고 있다는 점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기도 했다.

▽사법부와 권력기관도 물갈이 진행 중=사법부와 권력기관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법부는 지난해 8월 대법관 제청과정에서 소장판사들이 ‘서열주의 관행 타파’를 들고 반발하면서 사법부 내 보혁갈등으로 진통을 겪었다. 소장판사들의 시각에 동의했던 청와대는 대법원 수뇌부와 사법개혁을 공동 추진한다는 것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여기에다 2005년 9월 최종영(崔鍾泳) 대법원장을 포함해 앞으로 4년간 14명의 대법관 중 12명의 대법관이 교체된다. 이미 노 대통령은 대법원이 바뀌어야만 각 분야의 보수적인 판례가 재정립될 수 있고, 이는 정권교체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헌법재판소 재판관도 9명 가운데 지난해와 올해 초 2명이 임기 만료로 바뀐 데 이어, 앞으로 7명이 현 정부 임기 내에 모두 교체될 예정이다. 헌재 재판관의 경우 지난해 8월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낸 전효숙(全孝淑) 재판관이 헌재 사상 최초의 여성 재판관으로 파격 기용됐다. 사시 기수도 17회여서 기존의 서열에서 7단계나 내려갔다.

검찰 역시 지난해 3월 강금실 장관이 내놓은 파격적인 검찰 간부 인사안 때문에 검찰의 반발이 일었다. 그 파동으로 김각영(金珏泳) 전 검찰총장을 포함해 사시 12∼16회의 검찰 간부 10여명이 모두 퇴진했고, 검사장급 간부들은 사시 17∼20회 출신으로 완전히 물갈이됐다.

국정원도 고영구(高泳耉) 원장 체제가 출범한 직후인 지난해 5월 조직개편과 함께 국정원 본부의 실국장 및 각 시도 지부의 부서장(1, 2급) 33명 중 27명을 교체하는 대폭 인사를 단행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주니어보드' 곳곳서 잡음▼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6월 관료개혁 주체세력의 필요성을 거론한 뒤 각 부처에 만들어진 ‘주니어보드’(Junior Board·청년 이사회)의 역할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통령직속기구인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는 노 대통령이 “공무원사회가 개혁주체가 돼야 한다”고 언급한 직후 지난해 7월 내놓은 보고서에서 △각 부처 1∼3급은 고위공무원단 제도를 도입해 ‘정무직’화하고 △중간 허리인 4∼5급은 공직사회 내 ‘개혁세력의 중심’으로 삼겠다는 전략을 제시했다. 또 6∼9급의 하위직 공무원은 노조를 허용해 ‘우군화’한다는 복안을 내비쳤다.

이 같은 발상에 대해 부처 내에서는 공식조직을 무력화하고 부처 내 직원들간에 ‘편 가르기’를 유도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젊고 개혁지향적인 공무원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공식조직 활동과 별도로 부처 개혁에 접목시킨다는 취지이지만 실제 운용과정에서는 부작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외교부장관 경질 사태로까지 확산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외교부간 갈등의 이면에도 외교부 내의 주니어보드 멤버가 개입됐다는 흔적이 감지됐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지난해 10월경 외교부 안에서는 용산 미군기지 이전 재협상이 잘못됐다는 제보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접수됐으며 연말에는 일부 간부의 대통령 폄훼 발언에 대한 투서가 들어갔다. 당시 외교부 안에선 “문제가 있다면 상층부에 보고하고 논의해야 하는데 이를 바로 민정수석실에 알린 것은 조직기강 차원에서 말이 안 된다”며 제보자들이 주니어보드 멤버들과 관련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있게 나왔다.

한편 재정경제부는 사무관급 10여명으로 주니어보드를 구성해 몇 차례 비공식 모임을 가진 것 외엔 특별한 활동이 없다. 이미 가동 중인 공식조직의 업무혁신팀과 중복될 소지가 있어 내부적으로 자제하자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4급 이하 직원 20여명으로 실무자문단을 꾸려 각종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상대적으로 활동이 활발한 기획예산처는 한 달에 두어 차례 샌드위치 점심으로 외부전문가 초청 간담회를 갖고 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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