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동우/'감성마케팅'이 계속 통하려면

  • 입력 2004년 2월 11일 19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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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또 하나의 가족’ 광고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만든다. 요즘의 ‘통닭’ 편은 보름달이 휘영청 뜬 밤에 가족이 기차여행을 하면서 아빠가 아들의 달걀을 훔쳐 먹는데 딸아이가 카메라폰으로 그 장면을 잡는다는 내용이다. 그 앞의 ‘드라큘라’ 편은 가족이 홈시어터 앞에서 공포영화를 보다가 아빠가 아이의 입에 붙어있는 새우깡을 보고 놀란다는 내용. 모두 가족간의 따스함과 정감이 묻어나는 광고들이다. 물론 광고의 목적은 이 회사 제품인 카메라폰이나 홈시어터 선전이다. 최첨단 디지털 제품을 팔면서 모두가 그리워하는 아날로그 시대의 정서를 차용한 점이 돋보인다.

이 광고는 굳이 제품의 기능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대신 그 제품으로 얻을 수 있는 감성적인 효과만을 극대화해 보여주고 있다. 이와 유사한 광고는 적지 않다. 한때 냉장고 광고를 하면서 기능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고 잠옷 입은 주부를 내세워 ‘여자라서 행복하다’라는 카피(광고문안)를 내보내는 광고도 있었다. 소위 감성마케팅이다. 감성광고는 때때로 기능광고보다 효과가 있다.

경기도 문화예술회관 관장이며 숙명여대 겸임교수인 홍사종 교수는 기업뿐만 아니라 문화 정치 등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마케팅 기법에 대해 나름대로의 분석을 제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감성광고가 늘 효과적인 것은 아니고 그 시대 상황에 따라 기능광고와 감성광고의 효과가 반복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감성광고로 가장 큰 재미를 본 사람은 단연 노무현 대통령이다. 지난 대선 때 그러지 않아도 차갑고 날카로운 이미지가 있는 이회창 후보가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단정히 매고 ‘반듯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단언했을 때 노 후보는 자주 눈물을 보이거나 기타를 치면서 ‘따뜻한 사회를 만들겠다’며 감성적으로 접근했다. 다수의 국민이 ‘국정 수행능력’이라는 기능보다는 ‘따뜻함’이라는 정서에 표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감성마케팅이 계속 통하기 위해서는 기능은 당연한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 아무리 감성마케팅 기법을 사용해도 한 번 써보고 엉터리라는 판단이 서면 무섭게 돌아서 버리는 것이 소비자들이다. 더구나 사람들의 정서는 변하는 법이다.

최근의 광고는 기능 중심으로 서서히 변하는 추세라고 한다. 광고는 바로 돈이고 판매와 직결되기 때문에 시대 정서의 흐름을 가장 정확히 읽고 앞서가는 경향이 있다. 최근의 광고 추세는 노 정권 출범 이후 감성만의 선택이 얼마나 허망했는지에 대해 후회하는 일반의 정서가 그 배경에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끊임없는 국정혼란과 리더십 부재를 보고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사람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면 기업도 정당도 망할 수밖에 없다. 절대 자만하지 말아야 하고 늘 겸허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현 정부는 지난 대선 때 재미를 보았던 감성마케팅이 아직도 유효할 것이라고 자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노 정권도 출범 1년이 됐다. 마케팅은 상품을 파는 수단으로 중요하지만 소비자의 최종적인 신뢰를 이끌어 내는 것은 결국 상품의 성능과 기능이다. 마케팅보다 이제 실질적인 국정수행 능력을 키워야 할 때다.

정동우 사회1부·부국장급 fo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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