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이연숙/북한의 日人 납치 관련 '독선' 고발

  • 입력 2003년 11월 14일 17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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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 이론(異論)―흘러넘치는 ‘일본인 이야기’로부터 멀리 서서(‘拉致’異論―あふれ出る‘日本人の物語’から離れて)

오타 마사쿠니(太田昌國) 지음 오타(太田) 출판

일본 해안 지방의 일본인 행방불명에 대해 자신들의 관련성을 완강히 부인해 온 북한이 2002년 9월 북-일(北日) 교섭에서 갑자기 자신들이 ‘납치’했음을 인정하자, 일본 사회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국교정상화 교섭 석상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서 ‘납치’를 인정하는 발언이 튀어 나온 것이다.

그 후 북한 당국은 생존해 있는 납치 피해자를 발표하고 그들을 ‘일시적으로’ 일본에 귀국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일본 정부는 ‘일시적으로’ 돌아온 이 납치 피해자들을 북한으로 돌려보낼 의향이 전혀 없는 듯하다. ‘납치’ 문제가 표면화된 후 일본과 북한의 국교정상화 문제는 전혀 진전되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의 발언 이후 일본의 미디어는 ‘납치’ 일색이다. 물론 북한의 ‘납치’ 그 자체는 변호의 여지가 없는 범죄적 행위다. 그러나 일본의 ‘북조선(北朝鮮)’ 보도 역시 과한 대목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이것을 ‘흘러넘치는 일본인 이야기’라고 부른다. 오타씨는 “이 문제(납치 문제)가 표면화된 후 마치 1억수천만명의 일본인들이 모두 피해자인 듯 연출을 기도한 사람들이 있다”고 정리한다. 즉 북한을 ‘무법의 악인’, 일본을 ‘올바른 약자’로 그려냄으로써 북한을 전면 부정하고 일본을 전면 긍정하는 사고 회로를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우익 진영은 “일본의 식민지 통치는 당시 국제사회에서 승인된 합법적 사실임에 비하여, ‘납치’는 완전한 국가 범죄”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같은 주장이 얼마나 제멋대로의 논리이며 잘못된 역사인식에 기반하고 있는지 철저히 비판한다.

그러나 오타씨는 좌익 진영이 제기하는 “납치는 범죄지만 일본 역시 식민지배를 청산하지 않고 있다”는 논리에도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그는 ‘식민지 지배’와 ‘납치’를 저울에 올려 그 무게를 재는 사고법을 비판한다. 왜냐하면 이 두 사실은 ‘상쇄의 논리’로 청산될 수 없으며, 별개의 문제로 다뤄져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

일본의 진보파 또는 시민파라고 불렸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과거에 북한이 납치했다는 보도에 대해 ‘반공적 선동’이라며 강하게 부정했다. 이들은 북한이 납치에 관여했음을 실토하자 우왕좌왕하고 있다. 이런 행동에 대해 오타씨는 ‘사회주의의 환상’에 빠져 있던 일본 좌익 특유의 취약성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 같은 진보파의 허약함은 독선적 내셔널리즘이 점점 판을 치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저자의 지적이 날카롭다.

이연숙 히토쓰바시대 교수·언어학 ys.lee@srv.cc.hit-u.ac.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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