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필씨, 당신의 영혼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 입력 2003년 10월 20일 09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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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노무현 후원회장이 유종필 민주당 대변인에게

“마지막으로 저의 영혼을 바쳐 돕겠습니다.”

유종필씨.

기억이 날 것입니다.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쟁이 시작되고 점차 열기가 뜨거워지기 시작한 2002년 초, 여의도 금강빌딩 저의 방에서 바로 유종필씨가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얼굴로 내게 한 말입니다.

“이제 제가 가야할 길을 찾았습니다. 저는 노무현 후보를 위해서 저의 영혼을 다 바치겠습니다.”

영혼을 바친다는 말 한마디.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나는 그냥 고맙다고 의례적인 대답을 했지만 가슴은 감동으로 떨렸습니다. 당신같이 총명한 언론인 출신이 우리와 함께 일을 한다면 유비가 제갈공명을 얻은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몇몇 참모들은 당신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의 이런저런 얘기를 했지만 나는 일축했고 바로 노무현 후보에게 당신의 뜻을 전하고 천거를 했습니다.

영혼을 바친다는 당신의 말은 노무현 후보에게도 역시 감동이었나 봅니다. 노 후보는 당신의 마음이 너무나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 후 당신의 활약은 환상적이었습니다. 순발력 있는 대응, 적절한 비유, 촌철살인의 논평, 노무현 후보의 공보특보인 유종필의 눈부신 활약 앞에 다른 후보의 홍보특보들은 빛을 잃었습니다.

우리 캠프에서 당신은 영혼으로 노 후보에게 헌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노 후보가 한 말을 우리는 지금도 기억합니다. 노 후보는 당신을 보석이라고 했습니다. 보석을 주웠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진정 보석이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기쁠 수 가 없었고 나는 정말 우쭐했습니다. 사람을 보는 눈이 있다는 찬사가 자랑스러웠습니다. 당신에게 정성을 다 했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후보에게 영혼을 바치겠다던 당신의 진지했던 모습은 아무래도 거짓이었던 같습니다.

왜냐면 당신이 어느 신문과 가진 인터뷰 '2004년 출마합니다'라는 기사를 보니(내가 보지 않는 신문이지만 누군가 당신의 기사를 전해 주었음) 노무현이란 정치인에게 충성을 한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결국 당신의 '영혼 바치기'는 기막히게 계산된 연기였다는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유종필씨.

난 정말 당신을 좋아했습니다. 매사를 당신과 의논했고 당신도 그랬습니다. 무주구천동에서 있었던 단합대회 때 당신과 나는 마이산을 찾았죠. 많은 얘기를 했습니다.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에 대해서도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정치인이 야망을 갖는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야망이 없다고 하면 그는 거짓말쟁이거나 정치인의 자격이 없다. 단 조건이 있다. 야망이 대의와 명분에 어긋나면 야망을 버려야 한다.”

이것이 노무현 후보의 정치관이고 나는 이를 당신에게 몇 번인가 말해 주었습니다. 대의와 명분. 이게 얼마나 필요한 정치인의 철학이겠습니까. 당신도 동의했죠. 철학을 전공한 영민한 당신이 왜 모르겠습니까.

유종필씨.

참으로 알 수 없는 게 정치더군요. 당신이 광주보궐 선거에 입후보하겠다고 했을 때 당신은 노무현 후보의 지지나 낙점을 원했겠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 때부터 당신이 '삐졌다고' 했지만 당신처럼 현명한 사람이 그럴 리가 있느냐고 나는 부정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당신은 왠지 혼자 겉돌았습니다. 입이 거칠어졌습니다. 당신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고 해도 그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감정을 삭히라고요. 때가 지나면 마음도 풀릴 것이라고 달랬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얼어붙은 마음은 녹지 않았습니다.

노무현에게 맡긴다던 당신의 영혼은 그로부터 멀리 떠나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관악구에서 이해찬 의원과 맞서 출마한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유종필이 변하고 있구나 섬짓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해찬 의원과 당신과는 깊은 인연이 있다고 나름대로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신이 걸어 온 길을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당신은 많은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자 생활과 국민의 정부에서 비서관 생활. 기업체 생활. 이곳저곳 전전하면서 직장을 많이 바꾸었습니다.

그게 훈장인지 상처인지는 모르지만 당신을 아는 사람들은 성격 탓이라고 했습니다. 실리에 집착하는 성품 탓이라고도 했습니다.

글쎄요. 그건 당신이 더 잘 알 일이겠지요. 그러나 어쨌든 마지막으로 영혼을 바치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독기 서린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당신을 보면서 저것이 바로 당신의 실체로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 떨리는 전율과 슬픔을 느낍니다.

유종필씨.

당신의 영혼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이른바 '후단협'이라는 사람들이 노무현 후보를 흔들며 몰아내려고 했을 때 당신의 모습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분노했고 그 분노는 진실이었습니다.

지지율은 떨어지고 민주당에서는 후보를 사퇴하라는 보이지 않는 매질이 연일 계속될 때 함께 상심하던 우리는 동지였습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상식이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자는 우리의 소망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순백의 염원이었습니다.

자기들이 선출한 대통령 후보를 저렇게 흔드는 사람들은 정치인도 아니고 뒷골목의 깡패만도 못하다는 것이 당신과 나의 공통된 인식이었습니다.

정치를 못하면 말지 저런 사람들과는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이 당신의 정치철학임을 나는 굳게 믿었습니다. 비바람 치는 광야에 홀로 서서 오직 대의와 명분으로 망국적 지역감정과 철벽같은 기득권 세력에 맞서 혈투를 벌리는 노무현 후보와 뜻을 함께 한다는 자부심만으로 우리는 가슴이 벅찼고 주머니를 털어 주린 배를 채우면서도 우리는 행복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과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신은 누구와 함께 있습니까. 지금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들은 그 때 무엇을 하던 사람인가요. 그 곳이 당신의 정치적 꿈을 꽃피울 곳인가요.

지금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들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탈당을 하라고 강요한 분들이 아닌가요. 탈당을 하라고 할 때는 언제인데 지금은 배신자라고 합니다. 당신은 동의합니까.

옛날의 당신으로 돌아가 분명하게 대답해 보십시오. 당신의 정치철학을 그 곳에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말은 안 해도 양심은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유종필씨.

당신이 민주당의 대변인이 되었을 때 마음속으로는 안 좋았지만 축하를 했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설사 당신이 민주당의 대변인이 되었다 해도 퇴로가 없는 말은 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정당하지 못한 말은 반드시 부메랑이 되어 다시 돌아옵니다.

노무현이 배신을 했다느니 하는 말을 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왜냐면 배신한 사실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도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여전히 배신을 입에 올리더군요.

지난 9월 26일 KBS의 ‘안녕하십니까 강지원입니다’에 출연한 당신은 너무나 태연하게 배신이란 말을 입에 담았습니다. 연이어 출연한 MBC의 시사프로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도 역시 당신의 입은 험한 말로 더럽혀지고 있었습니다.

즉시 나는 당신에게 전화로 항의를 했고 그것으로 우리의 관계도 단절이 됐습니다. 나는 참 세상이 허망하다고 탄식을 했습니다.

당신의 영혼을 믿은 나의 잘못에 자책하면서 몸을 떨었습니다. 사람을 보는 내 눈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싶어 자신이 미워졌습니다. 당신을 꺼려하던 참모들의 말을 왜 안 들었나 하고 후회를 했습니다.

유종필씨.

머리 좋다고 함부로 말 만들어 내지 마십시오. 누가 누구를 배신했습니까. 당신의 영혼은 여기 저기 날라 다니는 벌 나비인가요. 당신의 영혼은 필요에 따라 언제나 진상되는 제물인가요. 죄 없는 영혼을 너무 학대하지 마십시오.

당신 주위에 언론인들이 참 많죠. 진심으로 물어 보십시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대변인만은 하지 말았어야 된다고 말입니다.

TV에 매일 나오는 것이 그렇게 좋은가요. 당신의 얼굴을 보면서 '아닌데… 아닌데…' 하며 안스러워 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사람은 자신이 설 자리가 어디인가를 잘 살펴야 합니다.

묻습니다.

대통령 선거 때 노무현 후보를 매도했던 '후단협' 정치인들과 노무현 대통령에게 탈당을 하라고 압박하던 오늘의 민주당 사람들은 유종필씨가 분노에 떨던 그 때 그 사람들과 얼마나 다른 사람들입니까. 그 당시 그들에게 쏟던 당신의 분노는 가짜였나요. 아니면 시류에 따라 바뀌는 당신의 정치철학 탓인가요.

그 때 분노하던 모습은 위선이었나요. 나를 위로하던 당신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단지 ‘립 서비스’에 불과했나요. 양심을 외면하면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믿지 않나요.

이른바 정당의 대변인이란 사람들이 매일 쏟아내는 거짓들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던 당신이 바로 그 자리에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을 보고 나는 정치가 사람을 저렇게 망가트리는구나 하는 참담함을 느끼면서 하필이면 저 사람이 한 때 내가 그처럼 좋아하던 사람인가 하는 슬픔을 금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지만 당신이 민주당 대변인을 하고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을 해도 최악의 선택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유는 당신이 설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유종필씨.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들이 대통령 선거 후에 돈벼락을 맞았다고 했더군요. 벼락 중에 가장 맞고 싶은 것이 돈벼락이라고 한다는데 그냥 한번 해 본 소린가요. 근거가 있나요. 나도 대통령 측근이라고 남들이 말하던데 내가 돈벼락을 맞았다고 생각하나요.

유종필씨. 사람은 평생 동안 수도 없이 변한다고 하더니 당신은 너무나 사납고 치사하게 변했습니다. 당신은 지금 잃어가고 있는 그 많은 소중한 것들을 어떻게 찾으려고 하나요. 잃어버린 것을 찾기가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당신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고통스럽습니다.

당신과 함께 나누던 그 순수한 많은 얘기들을 내 기억 속에서 지우면서 나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감수해야 합니다.

유종필씨.

이제 당신은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자던 꿈을 접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 같은 꿈은 꿀 자격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선택한 길입니다.

당신이 가야 할 길은 당신이 그처럼 매도했던 위선의 정치꾼들이 걸어 온 그 길입니다. 그토록 반듯하고 순수하고 모습조차 준수한 당신의 대한 내 평가가 잘못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고통을 준 당신에게 나는 무엇이라고 할까요. 그냥 한마디만 남기겠습니다.

“유종필씨. 당신의 영혼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2003년 10월 18일 새벽. 이기명

▼덧붙이는 글▼

인간에게는 마지막으로 지켜야 할 선이 있다. 그것은 자기를 믿어 준 사람에 대한 신의다. 그것이 바로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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