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철칼럼]'신권위주의' 등장인가

입력 2003-06-18 18:23수정 2009-10-10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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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각 부처 개혁주체세력 구축’ 의도를 보면 이 정권이 안팎에서 받고 있는 엄청난 개혁압력을 알 수 있다. 정치개혁을 유난히 강조한 정권이지만 눈앞의 정치난장판을 보면 엄두도 내지 못할 현실을 절감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경제를 포함한 다른 어느 부문도 개혁시동이 제대로 걸릴 형편이 아니다. 더욱이 내년 총선에서 부분적 개혁성과라도 내놓아야 할 처지의 개혁중압감은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공무원사회란 지름길의 편법을 택한 것 같다. 권력주변엔 항상 묘책을 내놓는 책사(策士)가 있다. 그런데 총리나 비서실장 등 핵심인사들의 사후 해석이 조금씩 다른 것을 보면 권력내부의 신중한 논의 없이 선뜻 헌책서(獻策書)부터 받아들인 것 같다.

▼개혁독점욕이 문제 ▼

지금 같은 대명천지에 묘책이란 없다. 오히려 스스로를 궁지로 모는 악수(惡手)가 많다. ‘개혁세력’에 대한 이런저런 추가설명이 있지만, 비슷한 발상에서 시작했던 DJ정권 ‘제2건국위’의 형해화(形骸化)된 말로를 상기해 보라. 문제는 우리만이 개혁을 해낼 수 있다는 개혁독점욕이다. 철권을 휘둘렀던 군사정권은 애국을 독점하려 했다. 이제 애국자리에 개혁을 대입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개혁독점욕을 버려야 한다. 대통령이 공언했으니 개혁세력 구축은 공직사회를 흔드는 부작용 속에서라도 어떤 형태로든 진행될 것이다. 그 결과에 대한 공과는 몽땅 정권의 몫이다.

여기서 특히 지적하고 싶은 것은 개혁세력 구축에서 드러난 대통령의 발상이다. 그런 의식이 잠재하는 한 제2, 제3의 ‘사건’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개혁세력 구축을 처음 언급하면서 대통령은 ‘나의 정치적 가치’ ‘대통령의 국정철학’이란 표현을 거침없이 썼다. 이어 ‘나에게 줄을 서라’했으니, 한마디로 대통령코드에 맞추라는 요구다. 권위주의가 따로 있는 것인가. 한때 내걸었던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란 플래카드가 즉흥적 장식용이 아니었다면 그런 듣기 거북한 ‘하향식’ 표현은 삼갔어야 했다. 프랑스 루이 14세의 ‘짐(朕)은 국가다’라는 말이 생각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공무원이라도 가치나 철학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인간의 내면적 가치는 그대로 인정하고 놔두는 것이 순리요, 헌법에 보장된 양심의 자유다. 나아가 ‘불용납과 문책’을 언급한 대목에 이르면 권위주의 색채는 더욱 뚜렷해진다. 조지 오웰의 ‘1984년 빅 브라더’가 생각나는 것은 무슨 이유겠는가. ‘나의 가치, 나의 철학’의 강조 속엔 독선이 꿈틀대기 마련이다. 더욱이 앞으로 입법이나 정책화 과정에서 검증이 필요할지도 모를 대통령의 가치와 철학에 국가기관과 공무원을 하나로 묶는다는 것이 될 법이나 할 일인가.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망상이다. 그 결과는 분열뿐이다.

탈권위주의를 외쳐온 노 대통령이 왜 그런 말을 했겠는가. 대통령은 곡절 끝에 이룬 대권쟁취에 대한 대단한 성취감 못지않게 피해의식에 짓눌리고 있는 것 같다.

▼소수정권의 피해의식 ▼

특히 다수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소수정권일 때 피해의식은 커지는 법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부분에서 다시 권위주의 의식이 번뜩인다. ‘성공한 대통령 평가는 내가 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목은 마치 국민추대로 대통령에 옹립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한 오만을 읽게 한다. 결국 대통령의 지위와 통치권의 권능을 극대화하여 비판세력을 제압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선서 승리했지만 지지율은 48.9%로 반을 넘지 못했고, 또 많은 사람들이 다른 후보를 지지했다는 사실을 잊었는가. 현실에 겸손한 대통령이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자주 자신을 피해자로, 박해받는 사람으로 투사(投射)시키는 이유가 동정적 호응을 유발하려는 의도라는 풀이가 있다.

대통령의 철학과 정치적 가치가 통치권의 전부는 아니다.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대의민주주의라는 원칙이 엄연히 존재하며 모든 것이 법치주의 틀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 우리 헌정질서다. 통치권도, 국가개조도 이를 넘을 수 없다. 이대로 가다간 ‘신권위주의 등장’이니, ‘개혁독재’니 하는 말이 왜 나오지 않겠는가.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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