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피터 벡/미국의 대북정책 '당근'이 없다

입력 2003-06-18 18:18수정 2009-10-1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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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재난을 초래하지 않으면서 북한 핵문제에 대한 세계의 우려를 해소할 길은 없는가. 지난 수주일 동안 있었던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 핵 위기는 계속 심각해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미 양국은 북한에 대한 서로 다른 접근 방법을 놓고 힘겨루기를 계속하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남북한을 잇는 철도의 재연결로 북한의 경제적 회생을 도모하려는 한국과 경제적 고립을 강화해 북한을 몰락시키려는 미국의 대립적 접근 방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하와이에서 열린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는 그런 차이를 가리기 위한 마지막 시도로 비쳤다.

노무현(盧武鉉) 정부는 북한을 신뢰할 수도 없지만 미국은 얼마나 더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한국 정부가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의 접근 방식이나 결정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종교적 열정에 가까운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미국의 강경파들이 국무장관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고 자신들이 기대하는 평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자기측 분석가들에게 의지하는 마당에 이들이 다른 나라의 대사나 심지어 국가원수의 의견이라 하더라도 들으려 하겠는가.

미 국방부는 일방적으로 비무장지대에서 미군을 가능한 한 빨리 이동시키기로 결정했다. 다른 기관이나 1994년의 위기를 다뤘던 많은 관리들은 국방부의 결정에 당황하고 있다. 비무장지대에서의 미군 이동이 왜 북한과의 협상 조건이 되지 않은 것일까. 국방부의 결정은 모든 한국인에게 분명히 잘못된 신호를 보내고 있다.

미국은 지난 30개월 동안 북한과 두 번의 공식적인 만남을 가졌지만 모두 좋지 않게 끝났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놓고 갈려 있고,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일관성이 없다거나 정책 자체가 없다는 인식이 넓게 퍼져 있다.

지금까지 미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북한과의 대결 추구, 타협보다는 북한의 항복 요구, 조용히 북한의 붕괴를 기다리기 등 3가지로 특징지어진다. 행정부는 북한의 의도를 1994년에 시험해 봤지만 실패했다고 주장하면서 더 이상 시험해보려고 하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북한의 비밀 우라늄 핵 개발 계획이 폭로된 이후 미 정부 내에서는 북한에 대한 견해가 우파 쪽으로 기울어지는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 다국적 연합을 모색하는 것이 북한을 다루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재인식이 이뤄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미 외교협회(CFR)의 북한 태스크포스가 5월 내놓은 보고서에 잘 나타나 있다. 보고서는 다국적 연합 구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북한에 사용할 잠재적 ‘채찍’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당근’은 거의 다루지 않았다. 만약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할 경우 어떤 대가를 줄 수 있는지를 아무도 말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워싱턴의 한국 전문가들 사이에는 북한이 8000개의 사용 후 연료봉 재처리를 마치기 전이며 미국 대통령 선거전이 시작되기 전인 가을쯤 미국과 북한이 심각하게 대결할 것이라는 느낌이 강해지고 있다.

강경파들은 북한의 위협이 사실이기 때문에 이라크와는 달리 미국의 선제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한 조작된 증거나 과장된 주장에 의존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리처드 펄 국방부 정책 위원은 북한의 영변 핵시설에 대한 정밀 폭격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제안했다.

한 연구소의 분석가는 최근 부시 행정부가 미국을 구하기 위해 한국을 희생시킬 준비가 돼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미국은 대화 대신 북한의 불법적인 무기 수출에 대한 응징으로 사실상의 해상봉쇄 조치를 취함으로써 북한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려고 시도하고 있다.

한국에 있어서의 미국의 중요성과 북한의 불가측성을 고려할 때 노무현 정부는 미 행정부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북한과도 접촉하는 것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앞으로 수주일 동안의 도전은 솟아날 구멍을 찾는 일이 될 것이다.

피터 벡 미 한국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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