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도난담]'386이 흔들린다' 盧지지한 386세대의 '요즘심정'

  • 입력 2003년 5월 29일 17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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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모기자 momo@donga.com
박경모기자 momo@donga.com
노무현 대통령이 흔들리고 있다. 실리냐 굴욕이냐는 방미외교 시비, 노조의 요구에 굴복만 한다는 비판, 전교조에 대한 갈팡질팡 대응, 그리고 형 건평씨 등이 연루된 땅 관련 의혹까지 불거졌다. 노 대통령의 흔들림 현상은 그의 핵심 지지층이랄 수 있는 ‘386세대’까지 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노 후보를 지지했던 82∼88학번의 ‘386세대’ 5명이 23일 저녁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식당에 모여 노 대통령과 자신들의 딜레마를 이야기했다. 이들은 아직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었다.

● 정체성의 혼돈

노경완:방미외교에서 불협화음이 시작된 것 같은데 누가 대통령이 됐어도 노 대통령처럼 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노경완 (37·(주)아이에스 코리아 대표)
맹준열 (35·(주)넥서스커뮤니티 해외사업 팀장)
현승문 (34·V스타스 대표)
양제훈 (39·(주)케이티앤아이 대표)
김미근 (34·여·타와라 대표)

현승문:노 대통령을 지지한 386세대 자체가 반미를 외친 기억이 있잖아요. 노 대통령이 미국에서 한 행동과 언사에 그들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건 대선 전에 보여줬던 그의 대미 정책과는 안 맞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지요.

맹준열:그렇다고 노 대통령의 말과 행동을 자기 관점에서만 해석하고 배신감을 느끼는 건 좀 극단적이에요. 조지 W 부시 대통령한테 “우린 너희 필요 없다”고 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거죠. 더 중요한 건 노 대통령에게 외교 경험이 없다는 거겠죠. 어려운 과제는 산재했는데 경험 없는 신진세력이다 보니 실수를 할 수밖에 없는 건 아쉽지요.

현:노사모 같은 적극 지지층은 노 대통령에 대해 “배신감을 느낀다”고 합니다만, 글쎄요. 제가 주식을 하다 많이 까먹었는데 오늘 주가가 좀 올랐더라고요. 노 대통령이 미국에서 본인의 ‘내심’을 말했다면 주가는 400선으로 떨어졌을 테고 저는 이 자리에 못 나왔을 겁니다.

양제훈:외자 유치 때문에 외국인들과 제주도에 갔다 왔는데 이들은 노 대통령이 이익단체에 끌려 다니고 전교조 문제와 노조 파업 등에 대해 너무 관대하지 않은가 우려해요. 저는 너무 양보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김미근:사업상 일본인과 통화를 많이 하는데 노 대통령에 대해 거의 묻지를 않아요. 예전에는 대통령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었거든요. 반면 우리 국민이 대통령에게 이렇게 많은 애정을 표현한 적도 없었던 것 같아요.

노:하지만 오늘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부시 대통령 목장에서 픽업트럭을 함께 탔는데 노 대통령은 ‘이지맨(easy man)’ 소리를 들었단 말이지요.

맹:386들은 자기 정체성이 불분명해진 일종의 혼돈에 빠졌어요. 국가 경제도 커지고 외교적 위상도 높아졌지만 남북 분단의 긴장은 계속 존재하고요. 자기 목소리를 내는 강력한 국가를 바라지만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하겠다니까 주저하는 현실이란 말이지요. 노 대통령은 참여와 대화로 풀겠다고 하지만 과연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 건지 고민이지요.

현:노 대통령은 감정적이고 인간적인 면으로 다가서는 매력이 있어요. 그런데 그걸 좋아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너무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노 대통령도 지지세력 때문에 힘들다고 하잖아요. 기대치에 대한 부담감이겠지요.

● 천천히 그러나 과감하게

맹:노 대통령을 지지한 이유는 단순합니다. 노무현이라면 뭔가 바꿀 수 있고 한 시대를 종결지을 수 있다고 본 거죠. 대통령의 역할보다는 시대 흐름을 바꿔주는 역할을 기대한 거 아닙니까? 노 대통령이 자신의 역할을 과소평가하지 않았나 생각돼요. 또 미디어 대통령으로 부각되고 이미지에 신경 쓰다 보니 쇼맨십에 치중한 면도 있고요.

현:저는 음반 제작을 오래 했는데 한 가수가 정상에 오른 뒤 음반 1집, 2집 내다 음악적으로 변신하고 싶은 생각에 장르를 바꾸면 대중은 기존 장르를 고수하라고 하지요. 그런데 톱(top)에서는 톱이 해야 할 음악이 있어요. 성공한 것만 반복하는 건 병폐지요. 노 대통령도 자기를 바라보는 대중이 노사모만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겠지요.

노: 그래도 촛불시위는 정말 눈물나는 일이었어요. 미국에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죠. 재작년에 중국 국경을 넘은 미국 정찰기가 중국 전투기와 충돌했을 때 미국이 처음에는 ‘regret(유감)’라고 하다가 나중에 ‘apologize(사과)’라고 수위를 높였어요. 노 대통령 정권에서는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죠.

맹: 미군들이 본토와 한국에서 하는 행동이 많이 달라요. 미국에서는 부대가 훈련 나가면 환경처 사람이 훈련장을 따라다니면서 감시해요. 이 차이를 어떻게 바꾸는가. 중요한 건 노 대통령이 잘하든 못하든 국민이 밀어주고 믿어줘야지요. 미국과의 관계도 순차적으로 변화시키고요. 모든 걸 한꺼번에 다 바꿀 수는 없죠.

현: 노사모 회원이 많아야 30만명 정도고 인터넷 효과가 아무리 컸어도 지지층을 다 이끌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관객이 자신을 영화 주인공과 동일시하는 것처럼 나랑 비슷한 저 사람도 대통령이 될 수 있게 밀어보자는 생각이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청남대에서 골프하고 하니까 “비슷한 줄 알았더니 다른 사람이네” 이런다고요. 노 대통령도 세력과 조직이 없던 분이 청와대에서 고립되니까 답답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말 실수도 많아지는 것 같아요.

맹: 노 대통령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하고 비슷해요. 워터게이트 사건 때문에 대통령에 대한 불신이 쌓인 미국 여론이 깨끗한 대통령을 원해서 카터를 뽑았지요. 노 대통령도 크게 다르지 않지요. 이전 집권자에 대한 실망과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다 보니 뽑힌 것 아닙니까. 희망과 변화의 표심이었지 무조건 그를 좋아해서 그런 건 아니었지요.

노: 한총련 소요나 국내 비판에 신경질적 반응들은 세련되지 못합니다. 일부 언론을 수구 보수로 못 박는데 오히려 사랑의 매라고 볼 수도 있잖아요. 애정이 없으면 그런 비판도 하지 않지요. 국민의 질타로 받아들이고 반성하고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양: 노 대통령을 찍은 이유는 변화를 바란 거죠. 그래서 좀 과감했으면 합니다. 노조 파업도 이유가 있겠지만 당장 바로잡을 수는 없지 않나요. 과감하게 제압할 것은 하고 끌려 다니지 말아야지요.

● 연주자가 아닌 지휘자

맹: 저는 대통령의 권위가 퇴색할까 걱정입니다. 권위는 상징적인 의미인데 공무원노조 파업 같은 건 권위에 대한 존경이 타락하는 분위기예요. 그야말로 ‘막 가자는’ 것 아닌가요. 우리를 대표하는 신성한 자리로 봐야 하는데 너무 짓밟은 것 아닌가 하는 거죠.

양: 하루아침에 잘 될 것이라는 기대는 하면 안 됩니다.

맹: 변화는 남들이 바꿔주기만 바라서는 오지 않거든요. 노조는 필요하지만 너무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건 아닌가요. 전교조도 사회공동체의 이익보다는 집단적 사고와 이기주의에 집착하는 걸로 보여요.

노: 전 반대입니다. 전교조의 개혁과 대안 요구는 더 빨리 나왔어야 해요. 노 대통령이 전교조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잘못됐어요.

현: 리콴유의 싱가포르는 강력한 리더십과 정치력으로 개혁에 성공했어요. 노 대통령의 갈팡질팡하는 행보에 대한 실망감에서 386세대의 딜레마가 나온 거죠. 물론 전교조에 대한 지지와 반대의 어지러운 번복에는 말 못할 이유가 있겠지만요. 어쨌든 개혁을 끌고 나가려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맹: 맞아요. 강력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동북아경제중심 전략은 시기적으로 적당한데 어떤 의지를 갖고 어떤 방법으로 해갈 건지 잘 모르겠네요. 정부 관리들은 정책의 파급 효과에 대해서 정밀하게 분석하지 않는 것 같고요. 부동산 정책이 대표적이지요.

현: 엉뚱하게 금리를 건드려서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고 있어요. 분배보다 성장의 정책을 원했는데 분배 쪽으로 기울고 있어서 좀 서운하네요. 노 대통령을 도와서 정치 경제 사회 복지 등을 이끌어 줄 인재가 너무 없지 않은가 싶습니다.

노: 경제에 제일 신경 써야 하는데…. 정쟁만 난무하고 형 건평씨 땅 문제나 안희정씨 문제에 시간 보내선 안 됩니다. 신용불량자가 300만명을 넘었는데 이야말로 ‘개판’ 수준 아닙니까. 서민들이 먹고 살고 일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요.

맹: 이익단체나 각계 세력의 불신 해소도 시급합니다. 대화를 한다지만 서로 교감하려는 의지가 없어요. 단지 내 생각만 피력하고 맞서 싸우려는 게 전부지요.

현: 이익집단들을 이해시키는 것도 좋지만 반드시 실행에 옮겨야 할 정책은 이해를 못 시키더라도 밀고나가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일개 집단이 아닌 전체를 보고 가는 정책, 그것을 이끄는 리더십을 바랍니다.

노: 목숨을 걸고 일을 하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지 말고 다함께 갔으면 좋겠어요. 혼자 이 악기 저 악기 다 연주할 생각 말고 좋은 음악을 이끄는 지휘자가 되길 빕니다.

정리=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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