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달라진 對北-對美발언…왜?

  • 입력 2003년 5월 19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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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미국 방문 기간 중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북한 및 미국 관련 발언들이 취임 전후에 했던 것들과 달라진 이유가 무엇인지 관심을 끌고 있다. 취임 초기에 대등한 한미관계를 강조했던 노 대통령이 한미동맹의 중요성과 북한의 변화 필요성을 역설하는 등 한미간의 ‘코드 맞추기’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대북 대미관 변화를 둘러싸고 ‘저자세 친미외교’라는 비난과 ‘한미동맹의 중요성과 북한의 실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라는 상반된 평가와 함께 논란마저 일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와 관련, 18일 전남대 특강에서 “노무현이가 많이 변한 것 같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렇다”며 “대통령은 대안을 한번 생각해 보는 게 아니라 시시각각 선택을 해야 해서 나 스스로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태도 변화에 영향을 미친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 문안 조율과정에서 부닥친 미국의 강경한 태도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교통상부 이수혁(李秀赫) 차관보는 회담 1주일 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서주석(徐柱錫) 전략기획실장과 함께 워싱턴에서 미국과 공동성명 협의를 진행했다. 자구 하나를 두고 치열한 협의를 진행해야 하는 외교부가 미국의 실제 입장을 그대로 청와대에 전달했고, 한미관계 개선이 한반도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는 것이 정부 내에서 공감대를 이뤘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윤영관(尹永寬) 외교통상부 장관, 반기문(潘基文) 대통령외교보좌관, 김희상(金熙相) 대통령국방보좌관 등이 한미동맹의 중요성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신뢰구축 필요성을 노 대통령에게 적극 개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의 태도를 변화시킨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북한의 핵 위협이라는 분석이다. 북-미-중 베이징(北京) 3자회담에서 북한이 핵 보유를 선언하고 핵재처리 움직임으로 협박하고 나서자, 더 이상 핵 문제를 도외시하고 남북관계 개선만 생각하기는 어려웠다는 게 정부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북한이 한미 정상회담 직전에 특사 교환 제안 등 갖가지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했지만 북한의 지속적인 핵 위협을 지켜본 노 대통령이 이를 거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방미 중이던 12일 북한이 한반도비핵화선언이 무효화됐다고 주장하자 노 대통령이 대북 강경 입장을 더욱 굳힌 것으로 전해졌다.

변화의 조짐은 이보다 훨씬 전인 3월 초 국제적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의 신용등급 하향조정 움직임이 감지됐을 때부터 엿보였다는 지적도 있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후 전개된 급박한 상황을 지켜보면서 노 대통령은 북핵 문제나 한미 갈등으로 한국의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될 경우 경제에 치명적 타격이 온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대북 대미 인식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라는 관측도 없지 않다. 노 대통령은 이라크전 파병 등 여론이 엇갈리는 사안을 결정할 때 ‘국익을 위한 선택’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는데 이번 방미 기간 중의 언행 역시 ‘국익을 위한 불가피한 변신’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따라서 한미관계 및 대북정책 방향도 국익을 앞세운 전술적 변화로 나타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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