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행사 한총련 시위로 차질]“민주화 聖地가 무법천지로”

  • 입력 2003년 5월 18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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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열린 제23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이 파행으로 치달은 것은 무기력한 공권력과 불법단체인 한총련의 안하무인적인 집단행동이 원인이었다. 행사 참석자들은 “숭고한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자리가 무법천지로 바뀌었다”며 “불법시위에 대해 경찰이 정당한 공권력을 행사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개탄했다.

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되는 행사에 대통령이 지각 입장한 것은 전례 없는 일로 경찰 및 청와대 경호팀의 정보 부재와 상황대처 능력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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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행사 한총련 시위 차질"

▽불법시위=경찰은 이날 5·18 묘역 입구 삼거리 주변에 15개 중대 1800여명의 경찰관을 배치했으나 학생들의 불법적인 도로 점거를 막지도, 대통령이 도착하기 전 이들을 해산하지도 못했다.

학생들은 이미 하루 전인 17일 5·18 전야제 행사를 갖고 조선대에서 18일 ‘행사계획’을 토의한 상황. 이어 18일 오전 8시부터는 행사장 인근인 망월동 5·18 구 묘역에 모여들기 시작해 사실상 이들의 ‘대통령 막아서기 시위’는 예견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경찰은 ‘학생들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방미와 관련해 인도에서 피켓시위만을 계획하고 있다’는 첩보만을 안이하게 믿고 행사장 주변으로 대거 몰려드는 학생들을 제지하지 않아 화를 불렀다.

노 대통령 일행은 결국 행사장 정문(민주의 문)이 아닌 후문(역사의 문)으로 입장했다. 5·18묘역에는 2개의 출입문이 있으며 ‘후문’으로 불리는 역사의 문은 정문에서 좌측으로 120m 떨어져 있다.

이날 국립 5·18묘지 경비책임자는 김옥전(金玉銓) 전남지방경찰청장. 김세옥(金世鈺) 대통령경호실장의 친동생으로 공교롭게도 형제가 경비 및 경호라인에 함께 있었다.

▽어수선한 행사장 주변=기념식이 끝날 때까지 시위대가 해산하지 않아 노 대통령 일행은 유영봉안소를 들르는 계획을 취소하고 묘지관리사무소에서 10여분간 머무르다 다시 후문을 통해 다음 행사장인 전남대로 향했다.

그러나 학생 100여명은 강연장 옆에서 ‘굴욕적인 외교발언을 사과하라’며 노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고 학생회관에서 교내방송을 시도하는 등 극렬한 행동을 계속했다. 이 때문에 행사장인 대강당에는 사전에 초청된 학생 400여명의 입장만 허용됐다.

▽한총련 왜 이러나=한총련은 한미정상회담 직후 성명서를 내고 “노 대통령은 국민의 요구를 외면하고 치욕스러운 사대 예속과 구걸외교의 진면목을 보여 주었다”며 강경투쟁 노선을 분명히 했다. 한총련은 이미 1980년 5·18민주화운동이 미국의 방관 때문에 발생했다고 주장해 왔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항쟁의 도시’인 광주에서 방미 결과를 설명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려는 것에 대해 규탄 시위를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 반응=행사가 시작됐는데도 노 대통령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행사관계자들은 한동안 영문을 몰라 허둥댔고 참석자들도 “대통령에게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난 것 아니냐”며 술렁거렸다. 기념식에 참석한 5·18 부상자 박모씨(46·광주 남구 월산동)는 “기념식은 5월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유가족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자리”라며 “학생들의 주장이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엄숙한 기념식장에서 막무가내로 불법시위를 벌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5·18기념재단 이사장을 지낸 이광우(李光宇) 전 전남대 교수는 “많은 경찰관을 배치하고도 이 같은 불상사를 막지 못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무기력한 공권력을 비판했다.

시민 손모씨(45·광주 서구 농성동)는 “한총련의 합법화가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 대통령의 행사 참석을 막은 것은 한총련의 성격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며 “학생들의 이번 시위를 계기로 엄정한 공권력의 행사가 제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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