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성주/DJ의 病 ‘숨기기와 억측’

  • 입력 2003년 5월 15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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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병세를 두고 뒷얘기가 많다. 김 전 대통령은 최근 협심증 시술과 혈액을 깨끗하게 거르는 투석(透析)을 연거푸 받았다.

그런데 측근들은 “김 전 대통령은 건강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측은 1997년 대선 때부터 줄곧 ‘건강 이상설’과 싸워왔다. 대선 때 고혈압, 당뇨병 등의 의혹이 제기됐고 재임 중에는 암 발병설이 나돌기도 했다.

이런 의혹과 설이 나돌 때마다 김 전 대통령측은 언제나 “건강에 이상이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고 심지어 어떤 측근은 “너무 건강해 문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건강하다는 그 분’이 퇴임 후 협심증 시술과 혈액 투석을 연거푸 받았다.

측근은 혈액 투석을 받은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이전에는 괜찮았는데 심장 시술 뒤 콩팥 기능이 악화되는 것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투석을 받았고 증세를 봐가며 추후 투석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많은 의사들은 쓴웃음을 짓고 있다. 각종 정황과 의학상식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은 다른 신장염 환자처럼 투석을 받아 왔고 계속 투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경우와 너무나 대조적이다.

레이건 전 대통령측은 1994년 그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고 발표했다.

언론은 이를 크게 보도했고 미국 국민은 충격과 비탄에 잠겼다.

그러나 이 발표 이후 미국에서는 ‘치매와의 전쟁’이 선포되고 알츠하이머병 퇴치운동이 벌어졌다. 이 병을 퇴치하기 위한 연구에 예산이 대폭 지원됐고 관련 기금이 쌓였다.

물론 김 전 대통령측의 태도를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만은 없다. 한국에서는 병을 알리지 않는 문화가 뿌리 깊고 자신의 병을 알렸다가 음해에 시달리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거 때나 재임 중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사정이 다르지 않은가. 병세를 솔직히 밝힌다고 무슨 해가 있을까. 고령에 병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병세를 숨긴다면 오히려 나쁜 억측과 소문을 낳을 뿐이다.

최근 국내에서는 당뇨병과 고혈압으로 인한 콩팥 질환자가 크게 늘고 있다. 많은 환자들이 사회의 관심 밖에서 혼자 싸우고 있다. 일부는 콩팥 기증자를 못 찾아 외국으로 가기도 한다.

지금이라도 김 전 대통령의 병세를 소상히 밝히는 게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성주 사회2부 기자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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