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청남대

  • 입력 2003년 3월 6일 20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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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 휴가는 원기회복과 재충전의 시간이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복잡한 국정에서 벗어나 독서나 산책 등을 하며 급한 숨을 돌리다보면 여유를 찾게 되고 이것이 다시 국정의 생산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각국의 대통령들이 아무리 나라사정이 복잡해도 꼭 휴가를 ‘찾아 먹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만 해도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일년에 수십일 텍사스 크로퍼드 목장 등에서 휴가를 즐긴다. 이 기간에도 물론 주요 결재나 결정은 이루어지지만 아무래도 쉬는 쪽에 더 비중이 주어진다.

▷그처럼 길진 않지만 우리나라 대통령들도 여름이나 연휴 때면 휴가를 떠난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강원의 화진포별장,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남 진해의 저도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이후 주로 사용된 대통령휴양지는 충북 대청호 주변의 청남대. 80년 말 대청댐 완공 직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주변을 둘러보며 ‘이곳에 별장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꺼낸 후 공사가 시작돼 83년 완공됐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박 대통령 때 만들어 놓은 ‘지방청와대’도 많이 이용했다. 당시 부산 제주 전주에는 대통령숙소가 따로 있었고, 광주 대구 등에는 지사 시장 공관 안에 별도의 시설이 있었다. 하지만 김영삼 대통령 시절 ‘지방청와대’를 모두 폐쇄하면서 청남대만 대통령휴양시설로 남게 됐다.

▷청남대는 단순한 휴양지가 아니라 대통령이 정국구상을 하는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정이 꼬일 때나 결심이 필요할 때 이곳에 들어가 생각을 가다듬곤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우 금융실명제 발표나 전임대통령 구속을 앞두고 청남대에 들어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광복절기념사 등을 이곳에서 정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 언론들은 대통령이 이곳으로 가기만 하면 ‘청남대 구상’이란 표현을 써가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외국 대통령의 경우 골프 낚시 등 ‘쉬는 것’에 더 언론의 초점이 맞춰지는 데 비해 우리는 정국 구상 등 ‘일하는 것’에 더 관심이 모아지는 것이다. 문화차이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청남대를 주민에게 돌려주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해 이곳이 어떻게 다시 정비되고 무슨 용도로 활용될지 관심이다. 청와대는 청남대 때문에 주변이 경호지역으로 설정돼 그동안 주민들이 겪어온 불편을 이번 기회에 말끔히 해소해주겠다는 생각이라고 한다. 이곳 주민들의 오랜 요구를 수용한 셈이어서 기분 좋은 결정이라고 할 만하다. 원성의 대상이었던 청남대가 주민들에게 친근하고 지역경제에도 도움을 주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기를 기대한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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