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정부 2·27組閣]김진표 경제부총리 초고속 승진 화제

  • 입력 2003년 2월 27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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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 신임 경제부총리(왼쪽)가 재정경제부 차관시절 재경부 간부 등과 함께 경제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김진표 신임 경제부총리(왼쪽)가 재정경제부 차관시절 재경부 간부 등과 함께 경제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김진표(金振杓) 신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초고속 승진이 관료사회에서 화제다. 김 경제부총리가 차관에 임명된 날부터 부총리가 되기까지 걸린 기간은 약 1년10개월. 그가 1급(관리관)이 된 것이 1998년 11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준비기획단 사업추진본부장에 임명됐을 때니 1급 임명에서부터 따져도 불과 4년3개월이 걸렸다. 경제관료 사회에서 교수 등 외부 영입이 아닌 공무원 출신으로 이처럼 ‘초특급’으로 경제부총리까지 오른 사람은 김 부총리가 처음이다.》

45세에 부총리가 된 서석준(徐錫俊) 전 부총리가 차관 임명으로부터 5년7개월, 고속 승진의 대표사례인 임창열(林昌烈) 전 부총리가 2년11개월이 걸린 점을 감안할 때 놀라운 속도다.

▽철저한 준비성=그의 고속승진 비결은 뭘까. 가까운 공직사회 후배들에게 직접 털어놓은 비결은 예측능력과 준비성이다.

관료사회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오래 된 일화 한 가지.

중앙정보부의 위세가 ‘나는 새도 떨어뜨리던’ 1970년대 말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재무부 차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민속주 공급 확대 방안을 보고해 달라고 3번이나 이야기했는데 왜 반응이 없습니까. 내일 아침까지 당장 보고하세요.”

깜짝 놀란 차관은 담당 국장을 찾았고 담당 국장은 다시 담당 과장을 찾았다. 그러나 이미 퇴근한 뒤여서 연락이 되지 않았다.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국장에게 김진표 사무관이 물었다. “국장님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자네는 몰라도 돼. 부임한 지 한달밖에 안된 자네가 알긴 어려운 일이야.”

“그래도 한번 말씀해 보시죠.”

“민속주 때문에 그래.”

“민속주라면 제가 만들어 놓은 보고서가 하나 있습니다.”

재무부 차관은 다음날 중앙정보부장에게 무사히 보고를 마칠 수 있었다.

▽친화력과 조정능력=그가 재무부 조세정책과장 재직 시절, 부하직원들은 식사 모임자리를 만드는 데도 애를 먹었다. 그의 수첩에는 2개월치 약속이 빼곡하게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세련되거나 달변은 아니지만 구수하게 사람을 빨아들이는 말솜씨는 한번 만난 상대방을 그의 팬으로 만드는 최고의 무기로 꼽힌다. 주량은 두주불사(斗酒不辭).

그를 잘 아는 재정경제부의 한 고위간부는 “대인관계의 폭이 워낙 넓기 때문에 이해당사자가 많은 사안을 조정하는 데 뛰어난 장점이 있다”고 평가했다.

대인관계가 그의 조정능력을 이루는 전부는 아니다. 때로는 파격도 시도한다.

세제실장을 맡고 있던 2000년 그에게 주어진 가장 큰 현안은 에너지세제 개편이었다. 에너지세제 개편은 업계뿐 아니라 정부 부처간에도 이견이 너무 많아 조율하기가 쉽지 않던 사안. 그는 장, 차관을 제쳐두고 유관 부처의 장, 차관과 민주당 정책위의장 등을 직접 만나 에너지 세제개편을 성사시켰다는 후문.

김 부총리는 조직 내에서 상하 모두에게 신망이 두텁다. 상사에게는 ‘확실히 믿고 맡길 수 있는 부하’로, 아랫사람에게는 ‘리더십과 보스 기질을 갖춘 상사’로 평가받는다. 업무는 철저히 챙기지만 부하들에게는 정이 있다.

그는 재경부 세제실장을 거친 뒤 관세청장 등 외청장을 거치지 않고 2001년 4월 바로 재경부 차관에 임명됐다. 당시 진념(陳稔) 경제부총리가 “나와 함께 일할 차관은 꼭 김진표라야 한다”고 ‘고집’했다는 후문이다.

▽타고난 관운(官運)과 극복해야 할 한계=그러나 관운이 이례적으로 좋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재경부의 한 고위간부는 “김 부총리가 국무조정실장이 되지 않고 청와대에 정책기획수석비서관으로 남아 있었으면 부총리에 기용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경부 세제실장 시절 당시 노무현(盧武鉉) 해양수산부장관을 만나 깊은 인상을 심어준 것도 결국 탁월한 관운에 해당된다.

그러나 경제부총리로서 한계를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 세제(稅制)분야에서 일해 전체 경제를 보는 능력에 약간의 불안감을 준다. 또 대통령이나 청와대 정책실장으로부터 경제논리나 효율성에 현저히 어긋나는 ‘주문’이 들어왔을 때 단호히 ‘노(No)’라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다.권순활기자 shkwon@donga.com

천광암기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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