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北제재 준비]'對北 맞춤형 봉쇄' 독자강행 의지

  • 입력 2003년 2월 17일 18시 40분


코멘트
북한 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 지난해 말 ‘맞춤형 봉쇄(tailored containment)’ 정책을 검토하던 단계로 선회했다.

당시 맞춤형 봉쇄 정책이나 이번 대북 제재 추진 모두 뉴욕 타임스가 먼저 보도했다. 당시에는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등이 반발하자 미 행정부는 이를 추진한 바 없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 이후 한달 보름여 동안 북핵 문제 해결에 진전이 없었고 미 언론과 의회로부터 북핵 문제를 도외시하고 있다는 비난이 거세지자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다시 제재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단순히 대화와 제재 사이를 왕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긴 어렵다. 지난해 말 추진한 맞춤형 봉쇄는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북한을 둘러싼 관련 국가들과 공조해 북한을 경제적 외교적으로 광범위하게 압박한다는 구상이었다. 지금은 미국 혼자라도 제재에 나서겠다는 것. 한국과 중국의 동의를 얻지 못할 상황도 감안하고 밀어붙이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더구나 북한이 “어떤 제재도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는 상황에서 제재를 추진한다는 것은 미국도 실력행사를 배제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이 검토하고 있는 대로 북한 선박과 항공기에 대한 봉쇄조치를 취할 경우 바로 군사적 긴장이 야기될 수 있다. 미국은 지난해 12월 8일 스커드미사일을 싣고 예멘으로 향하던 북한 서산호를 나포했다. 그러나 타국적 선박을 정선 또는 나포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없어 풀어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은 이를 위해 단계적 전술을 구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먼저 중국과 러시아 등이 거부하지 못하도록 북한의 핵 개발을 규탄하는 상징적 결의안을 채택한 뒤 이를 바탕으로 보다 강경한 조치를 담아 2차 결의안을 추진하는 수순이다.

미국이 당초부터 북한과 대화하려는 의지 자체가 없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동안 북한과 미국은 양자 회담이냐, 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포함되는 다자(多者) 회담이냐 하는 대화의 형식을 놓고 입씨름만 벌여 왔다. 미국이 이라크에 집중하기 위한 ‘시간벌기용’으로 대화 제스처를 취했을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의 요구대로 2차 결의안에 응해 줄지는 미지수이며, 중국이 북한에 식량 등 원조를 계속하는 한 대북 고립정책은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뉴욕 타임스는 딕 체니 부통령이 4월 중국을 방문해 북한에 압력을 가하도록 요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北제재 누가 추진하나▼

미국이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 대북(對北) 제재로 기운다면 그것은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필두로 한 ‘매파’가 조지 W 부시 행정부 안에서 대북 문제의 주도권을 장악했다는 뜻이다.

지난달만 해도 미 언론은 ‘비둘기파’인 콜린 파월 국무장관을 수장으로 한 외교관들이 대북 문제의 전권을 행사하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외교 노력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강경파가 득세하고 있는 것.

럼즈펠드 장관의 지난주 상원 군사위원회에서의 발언은 미국이 대북 강경으로 선회한다는 강력한 신호탄이었다.

그는 “나는 한반도에서의 핵위협보다는 대량살상무기 확산국가로서의 북한의 위협이 더 크다고 본다”며 “북한은 미사일 기술을 전파하는 세계 최대의 확산국가이며 핵물질을 테러리스트나 ‘깡패국가’들에 판매할 수 있는 위협적인 국가”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부시 대통령이 지난해 1월28일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 축’ 국가로 규정한 이후 북한에 대한 가장 신랄한 비판이었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그러나 국무부의 협조 없이는 대북 강경 외교노선을 추진하기 어렵다. 파월 장관이 있는 국무부 내 럼즈펠드 장관의 동지는 존 볼턴 군축담당 차관. 럼즈펠드 장관이나 볼턴 차관 모두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방지라는 단일한 기준으로 국가들을 규정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