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들, 北송금 수사유보에 허탈-자괴감

  • 입력 2003년 2월 6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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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상선의 대북 비밀송금 사건이 특별검사 수사로 넘어갈 것이 확실시되자 검찰 내부에서는 수사 유보 결정에 대한 허탈감과 자괴감이 확산되고 있다.

불가피한 선택을 했다는 ‘현실론’을 펴는 견해도 없지 않지만 다수의 검사들이 수사 포기로 검찰의 신뢰 실추는 물론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는 ‘자책론’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이 같은 분위기는 날이 갈수록 이 사건과 관련된 새로운 의혹과 범법사실들이 불거지고 있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수사 유보 쪽에 섰던 일부 검찰 수뇌부마저 대북 비밀송금을 둘러싼 의혹이 갈수록 증폭되는 데다 특검 수사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되자 당혹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지검의 한 간부는 “정치권의 논의를 거쳐 잘 해결되기를 바랐던 것이지 특검에다 수사를 맡기고 싶은 검사가 누가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당초 ‘정면돌파론’을 폈던 검사들은 “범죄행위가 계속 드러나고 있는데 검찰이 스스로 눈을 감아버린 꼴”이라며 검찰 수뇌부를 겨냥했다.

지방 검찰청의 한 검사는 “이것밖에 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검찰을 준사법기관이라고 부르지 말고 행정부의 일부라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말은 아예 꺼내지도 말자”라며 울분을 토했다.

서울고검의 일부 검사들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수사할 때마다 정치권이 개입해 사건을 특검에 넘길 구실을 제공했고 검찰권에 대한 국민의 기대도 완전히 무너졌다”고 비판했다.

대검의 한 검사는 “검찰이 죽었다는 말까지 나왔는데 ‘죽은’ 검찰을 놓고 더 이상 시비를 할 일도 없지 않느냐”며 한숨을 지었다.

그러나 여전히 대통령의 ‘사법심판 부적절’ 언급과 대통령당선자의 ‘정치권 논의’ 발언이 나온 상황에서 수사는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말하는 검사도 적지 않다. 대검의 한 검사는 “검찰총장이 사표를 낼 각오를 하지 않고서 현실적으로 어떻게 대통령의 의중을 거역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현실론은 검찰 수사에 이어 특검 수사를 받게될 수 있다는 것에도 근거를 두고 있다. 이럴 경우 검찰이 ‘부실 수사’ 의혹으로 두 번 죽을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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