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5억 수사유보' 검찰내부 비판,반발

  • 입력 2003년 2월 4일 17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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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상선 2235억원 대북 비밀송금 의혹과 관련한 검찰의 수사유보 결정에 대해 검찰 일각에서조차 비판과 자조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같은 결정에 대해 심지어 민주당과 인수위측에서도 잘못된 결정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으며 법조계와 시민단체도 4일 수사유보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묵살된 수사팀의 건의=이 사건 수사를 준비해 온 서울지검 형사9부 수사팀은 최종 방침이 결정되기 전까지 일관되게 본격 수사 착수를 수뇌부에 강하게 건의했다.

수사팀은 지난달 23일과 24일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 등 핵심관계자 12명을 전격 출국금지 조치하는 등 수사 의지를 강하게 내비쳐 왔다.

수사팀은 또 2일 유창종(柳昌宗) 서울지검장과 3일 김각영(金珏泳) 검찰총장 등 수뇌부에 대한 보고 자리에서도 수사 착수에 대한 입장을 전달했다.

서울지검의 한 중견 검사는 "검찰이 정치적인 판단과 고려를 하는 기관이 아닌 만큼 드러난 범죄 단서를 중심으로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의견을 개진했으나 결과적으로 수용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수사유보 발표 이후 검찰내부 반응=다수의 검사들이 "이번에도 검찰이 원칙을 저버리고 정치적인 선택을 했다"고 비판했다.

서울 지청의 한 소장 검사는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 가지고 볼 때도 검찰이 수사를 하고자 한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수사 유보의 이유로 제시된 근거들이 국민들에게는 궁색한 변명으로 비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현실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검찰 수뇌부의 어려운 결정에 공감한다"는 반응을 보인 검사들도 많았다.

▽민주당과 인수위의 비판 목소리=민주당 함승희(咸承熙) 의원은 "검찰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방기하고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며 "검찰이 수사하면 위법 사항만 밝히면 되지만 특검이 수사하면 예민한 정책결정 과정까지 공개돼 남북관계나 북미관계를 난처하게 만들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는 "인수위에서 논의할 사항이 아니다"고 함구하는 분위기가 주조를 이뤘지만 일각에서는 "검찰이 너무 정치적인 잣대로 이 문제를 판단하고 있으며 특검제를 통해 규명하겠다는 정치권의 태도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있었다.

▽시민단체 학계의 비판 여론=변협은 4일 발표한 성명에서 "현대상선이 실정법을 위반한 혐의가 있고 국민적 의혹이 팽배함에도 불구, 검찰이 수사를 유보키로 한 것은 수사기관 본연의 의무를 포기한 것"이라며 "검찰이 대북송금 관련자, 자금출처, 액수, 지급경로, 송금목적 등을 철저히 규명해 독립성을 확보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 박원순(朴元淳) 변호사는 "검찰청법이나 형사소송법 어디에도 '수사보류'라는 것은 없다"며 "어떤 경우에도 진상 자체는 가려져야 하고 검찰은 이에 따라 기소유예나 불기소 처분을 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실련 고계현(高桂鉉) 정책실장은 "검찰이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다 오늘날 이렇게 망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정치적 논리에 휘말려 이같은 결정을 내린 데 대해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고 비판했다.

서울대 법대 안경환(安京煥) 학장은 "검찰이 정치적으로 독립돼 있지 않다는 한계를 알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린 것 같다"며 "그러나 진실 규명은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며 국민의 입장에서 봐야한다"고 말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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