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5억 北에 갔다]현대상선 2235억원 어떻게 전달했을까

  • 입력 2003년 1월 31일 11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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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상선이 산업은행에서 대출받은 4000억원 가운데 2235억원은 어떤 경로를 거쳐 북한으로 넘어갔을까.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30일 “국가정보원의 국내은행 계좌를 이용해 북한으로 곧바로 넘어갔다는 심증을 갖고 있다”고 말해 비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북한에 보내졌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따라서 이 돈은 용도만 대북경제협력으로 해놓고 다른 곳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다.

▽국정원의 가차명계좌 가능성〓지금까지 나온 정황으로 판단할 때 현대상선은 4000억원을 대출받은 직후 2235억원을 국정원의 국내은행 계좌를 거치며 달러화로 환전, 현대상선 해외현지법인 계좌로 송금하고 다시 북한의 비밀계좌로 보냈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국정원의 가차명계좌가 등장한다. 국정원 직원들은 수시로 이름 주민등록번호 본적 주소 등을 바꾸면서 이를 주민등록 전산망에 올려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말 그대로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내는 것.

따라서 이들이 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하면 은행에서 거치는 실명확인 절차를 빠져나갈 수 있다. 또 여러 은행에 다른 주민등록번호로 계좌를 만들어도 은행들이 서로 체크할 수 있는 기능이 없어 가차명계좌는 말 그대로 무수히 만들어낼 수 있다.

법인 설립은 더 쉽다. 수시로 회사를 설립했다가 청산하기 때문에 실체를 가려내기가 아주 어렵다. 국정원 직원의 명함은 일반적으로 ‘OO무역상사’ ‘OO물산’ 등으로 돼 있다.

무역업무를 하기 때문에 해외출장이 잦고 외국인 또는 외국기업과의 송금이 잦다는 점을 합리화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활동자금을 주고받는다.

현대상선은 국정원의 가차명계좌로 송금하고 국정원은 이를 외화로 바꿔 무역거래인 것처럼 위장, 현대상선 해외지사로 돈을 보냈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중국에 있는 한국계 은행 지점과 일본에 있는 조총련계 은행으로 송금돼 북한공작원이 인출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1765억원의 행적은〓4000억원 가운데 감사원과 현대상선이 밝힌 1765억원의 행방은 간단히 드러났다. 현대상선이 지난해 6월7∼8일 산업은행 자기앞수표를 다른 은행 수표로 바꾸고 곧바로 1000억원은 K증권 법인계좌로 이체돼 현대건설 기업어음(CP)을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나머지 765억원은 현대상선이 자체적으로 발행한 CP 등 차입금을 갚는 데 사용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대상선은 현대건설 CP를 6월13일 400억원, 6월21일 250억원어치를 매입했으며, 산업은행은 8월 중순까지 계속 만기를 연장해 줘 위기를 넘기게 한 후 모두 상환받았다. 따라서 CP 650억원은 산업은행 자금이 아닌 현대상선 자체자금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상선은 산업은행이 상환압력을 넣자 9월28일 300억원, 10월26일 1400억원을 갚았다. 결국 산업은행이 현대상선에 4000억원을 빌려준 것은 자금난을 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대그룹이 북한에 2235억원을 보내고 그 대가로 현대건설 지원자금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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