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북한의 이 같은 강경한 대응은 북한의 ‘선(先) 핵폐기’를 고집하던 미국이 대화기조로 입장을 선회한 가운데 나온 조치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미국 정부는 미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를 통해 북한과의 대화재개 의사를 밝혔고,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북한의 체제보장 문제를 다룰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북한의 불가침조약 체결요구에 어느 정도 호응할 의사를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NPT 탈퇴라는 극약처방으로 나선 것은 TCOG 회의 결과 및 미국 정부의 대북 대화 접근 방식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NPT탈퇴 선언 직전의 북한 움직임 | |
2002년 12월 12일 | 외무성 대변인 담화 통해 ‘핵동결 해제’ 선언.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감시카메라 및 봉인 제거 요구 |
12월 15일 | 조평통 대변인 담화, “전력생산을 위한 핵시설 가동과 건설재개 조치는 남한에 어떤 위협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 |
12월 22일 | 핵시설 재가동 위해 봉인과 감시카메라 제거작업 개시 |
12월 23일 | 영변 방사화학실험실, 핵연료봉 제조공장 봉인 제거 완료 |
12월 27일 | 원자력 총국장, IAEA 사무총장에 ‘IAEA 사찰관 추방 결정’ 서한 발송 |
12월 29일 | 외무성 대변인 담화, “미국의 제네바 합의 파기에 따라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유보’ 조치마저 위태로운 지경에 빠졌다”고 주장 |
2003년 1월 10일 | NPT 탈퇴 선언 |
결국 북한으로서는 NPT 탈퇴라는 강수를 통해 미국과의 협상을 직접적으로 요구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북한은 그동안 줄곧 ‘불가침 조약 체결’을 주장하며 미국과의 직접 협상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한미일 3국은 TCOG 성명을 통해 북한의 이 같은 요구에는 눈길을 주지 않고,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핵개발 프로그램 폐기선언을 해야만 북-미대화가 재개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정부 당국자는 “북-미대화 방향도 그나마 협상이 아니라 북한의 핵폐기 문제를 논의하는 데 한정했다는 점에서 북한의 실망감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북한이 정부성명에서 “미국은 ‘말은 해도 협상은 안 한다’는 오만한 태도로 대답에 나섰다”고 한 대목은 미국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정부성명에서 미국을 비난하면서도 핵무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강조했고, 핵무기 개발여부에 대해 북-미간 별도의 검증도 가능하다고 밝힘으로써 NPT 탈퇴 카드가 궁극적으로는 협상을 촉구하기 위한 의도임을 뒷받침했다.
북한이 특히 현 시점에서 이 같은 강경대응을 한 것도 주목된다.
미국은 TCOG 회의를 통해 북한과의 대화재개를 밝힘으로써 당분간 이라크 문제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는 게 미 언론들의 평가였다. 그러나 북한은 NPT 탈퇴 선언으로 미국이 이라크전을 매듭짓기 전에 북-미간 핵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워싱턴에 전달한 셈이다.
정부 당국자는 이와 관련, “북한은 미국이 이라크전에 본격적으로 개입되기 전에 자신들과의 협상문제를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압박을 가하기에 적기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미국의 대화재개 의사를 확인한 북한이 이제는 대화국면으로 접어들 것을 확신한 뒤 대미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선수를 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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