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후보 경제정책 비교/상속-증여세]"현행유지" "과세강화"

  • 입력 2002년 12월 10일 19시 07분


16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주요 후보 3명은 모두 서민 농어민 소상공인 등 경제적 약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또 일부 지지계층이 중복되고 상대방을 의식하다보니 이회창(李會昌) 후보와 노무현(盧武鉉) 후보 간에는 언뜻 봐선 차이점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구체적인 공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름대로의 ‘색깔’을 발견할 수 있다.

이 후보, 노 후보, 권영길(權永吉) 후보의 경제분야 공약 모토는 각각 ‘활기찬 경제’, ‘잘 사는 대한민국’, ‘함께 잘 사는 경제’. 즉 이 후보는 시장경제를 통한 경제적 역동성과 성장에, 노 후보는 성장과 분배의 조화에, 권 후보는 분배를 통한 계층간 불균형 해소에 무게를 두고 있다.

▽세제·금융〓이 후보는 재정 여건이 개선되면 법인세율 인하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노 후보는 조세감면의 하한선인 ‘최저한세율’(현재 일반기업 15%, 중소기업 12%)을 낮춰 세부담을 줄이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상속·증여세 분야는 대기업정책만큼이나 이 후보와 노 후보간 의견 차이가 뚜렷하다. 이 후보는 현행 ‘유형별 포괄주의’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노 후보는 ‘완전 포괄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상속 증여와 관련해 재산이 늘었다는 징후가 보이면 증가액 전부에 대해 세금을 물리겠다는 것.

소득세는 이 후보와 노 후보 모두 근로자의 세부담을 줄이고 누진세를 확대한다는 비슷한 흐름. 반면 권 후보는 과표 10억원 이상, 시가 약 30억원 이상의 부동산을 가진 부유층에 대해서는 ‘부유세’를 매기겠다는 독특한 공약을 내세웠다.

금융부문에서 이 후보는 금융기관의 자율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관치금융을 철폐하고 금융기관의 인사와 경영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없애 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하겠다고 약속했다. 노 후보는 재벌기업의 금융기관 사금고화를 방지하기 위해 ‘금융회사 계열분리 청구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재정·공기업 민영화〓재정적자와 ‘나랏빚’에 관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은 이 후보측. 이 후보는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질 때까지는 국가채무를 강제로 줄여가는 ‘국가채무감축법’을 추진하고 공적자금을 조기상환하겠다고 강조했다. 노 후보는 재정개혁을 통해 재정의 효율성·투명성·책임성을 높이고, 집중적인 국가채무 관리로 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하겠다는 다소 원론적인 정책을 제시했다.

공기업 민영화 분야도 세 후보간 의견이 뚜렷하다. 이 후보는 금융기관 민영화는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에너지산업 관련 민영화는 국민적 합의를 통해 추진하겠다는 생각이다. 노 후보는 민영화에 대해 여러 차례 ‘신중론’을 폈다. 권 후보는 금융 철도 전력의 민영화와 해외매각을 반대하고 있다.

▽농어업〓세 후보가 모두 2004년 쌀 재협상에서 관세화 유예를 관철시키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품목의 관세화를 유예 받은 일본 이스라엘 대만이 이미 관세화를 받아들이는 등 협상여건은 매우 불리한 처지여서 실현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이 후보와 노 후보는 농어촌 지원을 위한 한시세인 농어촌특별세의 시한(2004년말)을 연장하고 농가주택에 대해서는 1가구2주택이라도 양도소득세를 감면 또는 경감하겠다고 공약했다. 재정경제부는 농어촌특별세 연장은 검토할 수 있지만 농가주택 양도세 감면은 부동산 투기를 확대시키는 등 부작용이 더 많다고 설명하고 있다.

▽노동〓가장 차이를 나타내는 부문은 비정규직 근로자 처우와 외국인 산업연수생제도. 노 후보와 권 후보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 철폐를 명확히 밝힌 데 비해 이 후보는 “비정규직 근로자가 당당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외국인 산업연수생제도에 관해서는 이 후보가 활용 강화, 노 후보가 문제 개선, 권 후보가 이를 대신할 노동허가제 실시를 약속했다. 기업계는 중소기업 인력난 완화를 위해 외국인 산업연수생제도를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반면 시민단체들은 외국인 근로자들의 인권을 위해 노동허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기타〓외국인 투자 유치에 대해서는 이 후보가 가장 적극적이고, 권 후보는 경제자유구역(경제특구)법 폐지를 요구하는 등 가장 소극적이다.

이 후보는 인도적인 대북(對北) 지원은 늘리되 남북경협도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나, 노 후보는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적극 지원하겠다”며 좀더 적극성을 나타내고 있다. 권 후보는 대북경제교류 공기업을 설립해 공공성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후보는 임기동안 주택 230만호 건설을, 노 후보는 주택 250만호 건설을 내건 데 비해 권 후보는 주택과 상가의 임대료 상승률을 연 5%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천광암기자 iam@donga.com

▼대기업집단지정 출자총액제한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와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는 ‘대기업’(이 후보)과 ‘재벌’(노 후보)이라는 용어 선택을 둘러싸고도 신경전을 벌인다. 그만큼 기업정책에 대한 시각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

이 후보가 ‘기업 규제 완화’에 무게를 두면서 현 정부 들어 강화된 재벌 규제를 대폭 풀겠다는 입장인 반면 노 후보는 ‘재벌 개혁’이라는 말을 수시로 언급할 만큼 현 정부의 재벌개혁정책을 적극 계승한다는 방침이다. 민노당 권영길(權永吉) 후보는 재벌은 개혁 대상이 아니라 해체해야 할 ‘청산 대상’으로 보고 있다.

구체적인 대기업정책에서도 시각차는 확연히 드러난다. DJ정부의 핵심적인 대기업 규제 정책의 두 축인 대기업 집단지정제도와 출자총액제한제도에 대해 이 후보는 실효성이 없다며 ‘폐지’를 주장한다. 반면 노 후보는 포기할 수 없는 마지노선을 재벌 목소리에 밀려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권 후보는 그동안 규제 완화 차원에서 풀었던 규제 조치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의 이견으로 국회에 계류 중인 소액주주의 증권집단소송제도도 이 후보는 시기상조라며 반대하고 있지만 노 후보는 조기 도입하고 소송 대상 범위도 더 넓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후보의 재벌에 대한 상반된 시각은 조세정책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노 후보는 제도를 고쳐서라도 재벌의 편법 상속증여를 막자는 입장이지만 이 후보는 현행 상속증여세제(유형별 포괄주의)로도 충분하다며 규제 강화에 반대한다. 법인세도 이 후보가 기업 규모에 상관없이 인하를 추진한다는 쪽이지만 노 후보는 중소기업에 한해 선별적으로 인하를 검토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다만 노 후보의 재벌정책은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대표와 정책 조율을 끝낸 뒤에는 부드러운 기조로 바뀔 가능성도 없지 않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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