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한반도 전문가 특별대담]“北 개혁은 파멸위험 큰 도박”

  • 입력 2002년 10월 16일 18시 36분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는 북한의 경제 개혁·개방 조치와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의 최근 방북 이후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북-미관계가 다시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워싱턴의 대표적 한반도 전문가인 빅터 차 교수(조지타운대)와 마커스 놀랜드 미 세계경제연구소(IIA) 소장이 16일 이런 문제들을 놓고 의견을 나눴다. 두 사람은 14일부터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열리고 있는 연례 한미 안보학술대회(주제 한미 안보협력의 새로운 장)에 참석 중이다. 대담은 프라자호텔에서 이뤄졌다.

-켈리 차관보의 최근 방북은 큰 성과 없이 끝났고 북한은 미국의 ‘오만한 태도’를 비난하고 나섰다. 앞으로의 대북 관계는 어떻게 될 것 같은가.

▽마커스 놀랜드〓일본과 한국이 활발한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는 반면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에서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것은 북-미관계에 문제가 될 수 있다. 미국은 고립감을 느낄 것이며 이미 그렇게 느끼고 있다. 그러나 북-미 대화는 다시 시작될 것이다.

▽빅터 차〓이번 회담은 20여개월 동안의 대화단절 이후 시작된 첫 대화였다. 한꺼번에 많은 것을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켈리 차관보의 방북을 통해 분명해진 것은 이전 행정부와 달리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대량살상무기, 핵 사찰 등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분명히 했고, 이런 요구를 하더라도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앞서 놀랜드 소장이 언급했듯이 미국을 제외한 일본과 한국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북한과의 관계 진전을 꾀할 경우 미국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으로 보는가.

▽차〓미국의 고립감이 가중될 것으로 본다. 그러나 한반도 안보는 미국 없이는 논의 될 수 없다. 따라서 일본과 한국은 미국을 독려해 같은 수준에서 북한과의 관계 진전을 추구하고자 할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한국의 대선이 끝날 때까지 대북관계 개선을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는데….

▽놀랜드〓대북관계는 내년 초 한국의 새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큰 진전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지금 당장 미국에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라크이기 때문이다. 또한 부시 행정부는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길 바라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 후보가 승리할 경우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미 행정부의 대북 정책 취지에 잘 따라와 줄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오산이다. 한국의 차기 대통령이 현 대통령보다 보수적인 인사가 되더라도 한국 정부가 추구해 온 포용정책의 기본 취지는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차〓그 말씀에 동의하지 않는다. 북-미 대화는 대선과는 별도로 진행될 것이다. 대선 이전이든 이후든 시기가 적절하다고 양측이 합의하면 또 다시 대화를 시작할 것으로 본다.

-차 교수는 현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매파 포용정책(Hawk Engagement)’이라 부르고 기존 행정부의 정책과는 크게 다르다고 주장했고 또 1945년 이후 통일을 목적으로 하는 최초의 미국 대북정책이라고도 했는데….

▽차〓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부르는 한편 모든 대화와 협상에 임할 것이라는 다소 혼란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내가 제시한 매파 포용정책이란 이 같은 부시 행정부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한 일종의 ‘가설’이다. 부시 행정부가 그동안 구사해 온 수사(修辭)들이 모두 진실이라면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정권교체(regime change)를 원한다. 그러면서도 지속적인 포용정책을 지지한다. 따라서 한반도 통일을 궁극적인 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상당수의 한국민은 ‘부시 행정부의 강경책이 한반도의 해빙무드를 해쳤다’고 생각하고 있다.

▽차〓부시 행정부는 한국민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탄력적인 정책을 펴 왔다. 2000년 6월 이후 남북관계는 부시 행정부 출범 훨씬 전이자 부시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게 김정일(金正日)에 대한 의구심을 표명하기 훨씬 전부터 악화되기 시작했다. 방북 특사 파견에 있어서도 기존 입장에서 선회, 고위급 인사를 파견했다. 미국의 현 대북 정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둬야 한다.

-놀랜드 소장은 북한의 개혁·개방 정책에 대해 ‘파멸의 씨를 내포한 도박’이라고 했는데….

▽놀랜드〓7월부터 시작된 대규모의 경제개혁 조치는 크게 △시장화 △인플레이션△ △경제특구화 △타국으로부터의 경제 지원책 마련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 같은 대규모의 정책은 이전과는 달리 북한 주민 전체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만큼 북한은 스스로의 미래가 달린 대규모의 도박을 단행하고 있다. 만일 대규모의 경제개혁 조치들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사회 불안정과 불만은 물론 쿠데타나 민중봉기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보다 더 우려되는 부분은 북한의 인플레이션 정책이다. 북한은 시장 경제의 생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각종 상품에 대해 국가가 지정한 가격과 실제 시장가격의 차이를 좁히기 위해 북한 정부는 인플레이션 제도를 도입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주민들의 임금을 크게 올려 소비를 촉진시키면 가격이 안정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이 같은 정책은 단기적으로 소비를 촉진시켜 시장 경제의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볼 때 인플레이션이 심화돼 임금 노동자들이 희생양이 될 것이며 나아가 민중봉기(루마니아의 경우처럼)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차〓진정한 위험은 단절된 사회가 점차 외부와의 접촉을 시도하고 개방을 시작할 때 시작된다. 북한이 바로 그 시기에 직면해 있다. -마지막으로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에 대해 평가한다면…. ▽놀랜드〓남북한 긴장 관계를 해소하고 신뢰를 구축했다는 측면에서 햇볕 정책은 실질적인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양국간 경제교류는 보다 투명하고 실리를 추구하는 상업적 측면에서 진행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차〓햇볕정책은 분명한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인정할 가치가 충분하다. 만일 역사가 햇볕정책에 대해 비난한다면 ‘실패한 정책’이 아닌 궁극적 목표를 이루지 못한 ‘비극적인 정책’으로 기억할 것이다.

▲마커스 놀랜드▲

△현 미국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경제학 박사

△93~94년 미 대통령 경제자문회의(CEA) 수석 이코노미스트

△저서: 'No More Bashing:Building a New Japan-United States Economic Relationship'(2001)

▲빅터 차▲

△현 조지워싱턴대 교수

△영국 옥스퍼드대 졸업

△미국 컬럼비아대 정치학박사

△미 외교협회 회원

△저서:한미일 삼각안보(1999), 'Globalization, Strategic culture and Korean Modernization'(2002)

진행·정리〓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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