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후보 對北정책 점검]"평화정착 조치-교류협력 병행"

  • 입력 2002년 8월 21일 18시 55분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후보 - 연합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후보 - 연합
《동아일보는 대통령후보들이나 정당들이 중요한 공약성 정책을 발표할 경우 그때그때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검증할 계획이다. 그 첫 시도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가 21일 발표한 대북정책 기조를 검증한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가 21일 희망포럼 세미나에서 제시한 ‘이회창의 평화정책’은 당의 대북정책을 종합 정리한 것으로, ‘정책 정당’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후보는 대북정책에 관한 한 독자적인 대안 제시보다는 정부의 햇볕정책을 반대하는 데 치중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왔다.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달빛정책이라도 내놓아야 할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 평화정책은 그같은 비판에 대한 대답의 의미도 있다는 것이 당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햇볕정책과 무엇이 다른가〓이 후보가 제시한 평화정책은 군사적 긴장완화 등 평화정착 조치와 경제적 교류협력의 병행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교류협력에 중점을 두는 햇볕정책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설명이다.

한 관계자는 “햇볕정책은 우리가 먼저 대북 경제지원을 제공하면 북한도 달라질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대북 퍼주기’ 논란을 낳을 수밖에 없었지만, 병행원칙을 바탕으로 한 평화정책은 햇볕정책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평화정책은 북한에 대해 평화노력을 가시적으로 보여줄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대북정책에서는 군사적 긴장완화 문제가 실질적으로 전혀 다뤄지지 못했다는 것이 한나라당측의 주장이다.

또, 한미동맹에 바탕을 둔 군사적 억지력 유지, 동북아 평화협의체 추진 등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다원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도 햇볕정책과 구별되는 요소라는 설명이다. 현 정부도 한미군사동맹의 필요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 대북정책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는 남북간 직접 접촉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평화정책에서 말하는 남북한 당사자 주도, 단계적 실천 등 ‘평화구축 3원칙’이 정부의 대북 3원칙과 별다른 차별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의 기존 정책과는 무엇이 다른가〓이 후보는 그동안 대북 지원 등과 관련해 ‘상호주의, 국민합의와 투명성 확보, 검증’ 등 3원칙을 언급해왔다. 한나라당은 이를 ‘전략적 상호주의 정책’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독자적인 정책이라기보다 햇볕정책에 대한 ‘반대론’에 불과했다는 것이 당 안팎의 지적이다.

이 후보는 평화정책 발표를 통해 이처럼 체계 없이 언급돼온 대북정책을 ‘한반도 평화구축 방안’이라는 틀로 종합 발전시키는 동시에 “북한이 평화를 선택한다면 우리는 획기적 지원과 협력을 제공할 것이다”고 밝혀 대북 협력에 소극적이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데도 신경을 썼다.

한나라당은 평화정책이 이 후보의 정책 중 처음으로 고유 이름을 붙인 정책이라는 점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정책정당으로서 이미지를 확실히 하겠다는 전략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비판도 있다. 평화정책은 기존 대북정책의 ‘수정증보판’이라고 하지만 한반도 평화의 핵심축인 미국의 역할에 대한 개념 규정이 없고, 평화실현의 구체적 방안도 제시하지 못하는 등 여전히 미완의 상태라는 지적이다.

정부의 햇볕정책과 이회창 후보의 평화정책 비교
평화정책햇볕정책
3대원칙남북한 당사자 주도무력도발 불용
긴장완화와 교류협력의 병행추진흡수통일배제
단계적 실천화해협력적극추진
5대과제남북간 군사적 긴장완화와 적대적 대결구조 해소남북간 철도-도로연결
대량살상무기문제 조속 해결개성공단건설
한반도평화구축 가시화하면 본격적 대북협력금강산관광활성화
교류협력제도화, 분단고통경감 등 인도적 문제해결이산가족문제의 제도적 해결
남북한 및 미일중러 정상이 참여하는 동북아 평화협의체 추진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윤승모기자 ysmo@donga.com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

▽고유환(高有煥·북한학) 동국대 교수〓이 후보와 한나라당이 유지해온 대북 기조가 상당히 전향적으로 바뀌었다. 이 후보가 표방해온 대북 원칙은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와 거의 비슷하고 독자성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한반도 평화구축 문제를 구체화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동안 한미공조를 강조해온 것과 달리 당사자 주도 원칙을 제일 먼저 내세웠다는 점에서 체제 우선적 기조에서 민족 우선적 기조로 비중이 옮겨졌다고 볼 수 있다. ‘선(先) 긴장완화, 후(後) 평화교류협력’의 원칙이 병행원칙으로 바뀐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병행원칙이 정책과제의 내용에서는 먼저 평화를 구축해야 경제적 지원이 가능한 것으로 되어 있어 상충되는 부분도 있다.

▽동용승(董龍昇·북한경제) 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장〓한반도 평화구축의 방법으로 긴장완화와 교류협력, 당사자 주도 원칙을 내세운 것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기존에 밝혀온 대북정책의 기조와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문제 해결 및 제네바 핵 동결 합의 이행 부분은 사실 미국도 약속을 안 지킨 점이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 현실적으로 손질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6개국 동북아평화협의체(NEAPS) 추진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기존의 6자 회담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 후보는 당사자 주도 원칙을 평화구축의 최우선 조건으로 제시했지만 실제로는 다자간 협력을 통해 풀어야할 내부적인 문제들이 혼재돼 있다는 사실을 도외시한 것 같다.

▽서동만(徐東晩·북한정치) 상지대 교수〓이 후보가 국가혁신위원회의 대북정책 방안을 구체화한 뒤 대폭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서해교전으로 냉각된 남북관계가 갑자기 반전되면서 기존의 대북정책 논리로는 대응하기 힘들다는 판단에서 상황반전을 고려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호전적 이미지를 없애고 평화적 이미지를 보강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하지만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대북정책 3대 원칙과 한반도 냉전 해체를 위한 5대 과제를 상당 부분 수용했다는 느낌도 든다.

▼입안과정 누가 참여했나▼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후보는 21일 발표한 ‘평화정책’ 입안 과정에서 당 안팎의 다양한 자문그룹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당내에선 당 국가혁신위 통일외교안보분과 부위원장을 지낸 구본태(具本泰) 전 통일원 통일정책실장과 혁신위 작업을 총괄한 유승민(劉承旼) 여의도연구소장이 실무작업을 주관했다. 이와 함께 혁신위 자문교수단도 실무 작업을 도왔는데 서울대 B교수 등이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날 세미나를 주최한 희망포럼은 이 후보의 후원회인 ‘부국팀’내 자문그룹의 하나로, 언론에 처음 노출됐다. 정종욱(鄭鍾旭) 아주대교수 등 전직 대사들도 외교안보정책 자문에 응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 후보는 평소 가깝게 지내온 남북관계 전문가들의 의견도 적잖게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의 1월 방미때 동행했던 한승주(韓昇洲) 고려대 총장서리를 비롯해 이상우(李相禹) 서강대 교수, 현홍주(玄鴻柱) 전 주미대사 등이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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