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지고 보면 납북자 가족이라고 해서 월북자 가족에 비해 처지가 더 나은 것도 없었다. 주기적으로 정보기관에 불려가 조사를 받아야 했던 것은 기본이었다. 80년대까지 이들은 공무원 시험을 봐도 신원조회 과정에서 어김없이 걸러졌다. 이들에게 예컨대 사관학교 합격 같은 일은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국가가 보기에 이들은 아픔을 달래줘야 할 국민이 아니라 ‘감시의 대상’일 뿐이었던 것이다. 납북자 가족들은 그런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오히려 자신들이 월북자 가족으로 비쳐지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했다.
▷엊그제 6·25전쟁 당시 남한 전역에서 북한에 납치된 8만여명의 명부를 처음 공개한 ‘6·25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의 이미일(李美一) 이사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번 자료로) 월북자와 피랍자를 분명히 구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그동안 마음 고생이 얼마나 많았으면 대뜸 그 얘기부터 꺼냈을까. 그는 또 “250여 회원가족 중에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혹시 월북자 가족이 아니냐’는 의심의 딱지를 뗀다는 것이 당사자인 그들에겐 그토록 큰일이었다.
▷이 단체가 이번에 찾아낸 자료는 1952년 당시 공보처 통계국이 작성한 전국 피랍자 8만2959명의 명단 및 피랍장소 신원 등이 담긴 ‘6·25사변 피랍자 명단’이다. 이 이사장은 지난 수십년간 국립중앙도서관에 처박혀 있던 이 자료를 찾아내기 전까지 통일부 국가정보원 경찰청 정부기록보관소 등 관계기관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이들은 한결같이 ‘모르쇠’로 일관했다고 말했다. 이들이 과연 자료를 찾아보려는 최소한의 노력이나마 기울였을까 묻지 않을 수 없다. 납북 가족에 대한 감시 등 불이익을 주는 일에는 그처럼 철저하고 끈질기던 정부가 납북자 문제의 해결은 고사하고 이처럼 국가의 기본적인 임무에 무심했다는 사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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