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 4년 3]DJ 최대 실패작은 人事

  • 입력 2002년 2월 24일 18시 09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인사는 현 정부 출범 초부터 지금까지 삐걱거림의 연속이었다. 인사를 거듭할수록 ‘배제된 다수’가 늘어나면서 현 집권세력은 더욱 ‘소수’가 돼갔다. 그와 함께 개혁 추진세력은 점차 왜소해졌다. 그리고 이는 고스란히 국정난맥, 더 나아가 정권위기로 이어졌다.

▼글 싣는 순서▼

- <2>용두사미 개혁정책
- <1>기로에선 햇볕정책

물론 개각 때마다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의 ‘몫’을 따로 떼줄 수밖에 없는 원천적 한계도 있었지만, 여권 인사들조차 근본원인은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는 얘기를 서슴지 않고 있다. 인사 스타일 때문이다.

▽정실주의와 측근정치의 부작용〓취임 이후 김 대통령의 인사를 관통하는 것은 정실주의로 믿지 못하는 사람은 쓰지 못하는, 자신감 부재(不在)와 편협함이 악순환을 초래했다.

인선 과정에서 가리는 게 많다 보니 인재풀은 더욱 협소화됐고, 거기에서 사람을 뽑다보니 불공정인사, 편중인사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연고가 없어 ‘물’을 먹은 관료들은 ‘줄’을 찾아 헤매다 안 되면 불만세력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공직사회에 냉소주의가 급속히 확산된 것도 이에 기인한다.

부산 경남(PK) 출신의 대통령 측근인사가 정권 출범과 함께 ‘동백회’라는 PK 출신 공직자 모임을 만들자 PK 출신 공직자 대부분이 이 모임에 가입한 것은 인사파행이 빚은 희화라고도 할 수 있다.

‘1·29’ 개각은 DJP 공조가 와해된 뒤 단행된 최초의 ‘DJ 개각’이었다는 점에서 적잖은 기대감을 불러일으켰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DJ는 이번에도 주로 ‘가깝고 편한 주변사람들’을 끌어다 썼다.

뚜렷한 이유가 없었던 최경원(崔慶元) 전 법무부장관의 경질이 대표적인 사례. 후임에 호남 출신 송정호(宋正鎬) 장관이 임명되자, 여권 인사들 중에도 고개를 돌리는 사람이 많았다.

또 임동원(林東源) 외교안보통일특보의 유임과 박지원(朴智元) 정책특보의 재기용은 김 대통령이 측근정치의 울타리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측근정치는 여권 내부의 균열을 초래한 주요인으로 꼽힌다.

민주당이 지난해 정풍(整風) 파동을 겪으면서 ‘탈(脫) DJ’의 길을 걸었던 것도, 이로 인해 김 대통령이 당 총재직을 사퇴하게 된 것도 그 바탕엔 권력 핵심에 끼지 못한 다수 의원들의 뿌리깊은 소외감이 깔려 있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지역편중인사의 폐해〓여야는 지난 4년간 줄곧 지역편중 인사를 둘러싸고 공방을 벌여왔다.

지역편중 논란은 그렇지 않아도 DJ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영남지역 주민들의 정서를 자극해 지역감정 악화와 국론분열 심화의 결정적 요인이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중앙인사위원회가 지난해 발표한 ‘역대 정부의 출신지역별 공무원 인사운용 실태’를 보면 현 정권 들어 ‘호남 약진’이 두드러진다. 1∼3급 공무원들이 선호하는 부처별 주요 보직의 경우 호남 출신은 전두환(全斗煥) 정권 때 13.9%, 노태우(盧泰愚) 정권 때 10%, 김영삼(金泳三) 정권 때 11%에 불과했으나 현 정권 들어 27.3%로 급상승했다.

한나라당은 이를 ‘지역편중 인사’라고 공격했고 민주당은 ‘편중인사의 시정’이라고 맞받았지만 논란의 실마리를 제공한 것은 어쨌든 김 대통령과 여권이었다. 한 고위공무원은 “객관적인 수치보다는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힘있는 자리에 어느 지역 출신이 앉아 있느냐는 ‘체감 인사편중’이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소수에서 더 소수로〓현 정부는 40%대의 낮은 지지율로 집권한 ‘소수 정권’이었다. 그러기에 정권의 성패는 어떻게 ‘다수’로 변신하느냐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인사정책의 실패가 다수의 외면을 초래했고, 배제된 다수는 김 대통령이 추진한 각종 개혁정책에 대한 적극적 반대세력으로 변해갔다.

2000년 4월 16대 총선에서 패배한 이후 여권은 그나마 반(反)정부화된 다수를 설득하기에도 힘이 부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 상황에서 개혁의 추동력이 나올 리 만무했다. 4대개혁을 비롯해 현 정권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각종 정책이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된 것도 근본적으로는 인사정책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 진단〓중앙대 장훈(張勳) 교수는 “폭넓게 의견을 듣기보다는 소수사람들에게 의존해 주요문제를 결정해온 김 대통령의 민주화 운동 시절 습관이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그대로 지속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대통령에게 다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들의 진출이 봉쇄되면서 내부 견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며 “인사정책의 실패가 임기 후반 사실상의 국정마비를 불러왔다”고 말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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