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정책 딜레마 2題

  • 입력 2002년 2월 21일 18시 32분


▼‘金正日 답방’매달려…DJ, 對北성과 집착 대외정책 균형 잃어

지난 4년간 남북 및 북-미관계에 대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언급은 ‘햇볕정책’의 전범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김 대통령이 햇볕정책의 성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이후로는 국내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무게가 실렸다.

스티븐 보즈워스 전 주한미국대사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한반도 주변 4강이 한반도 평화정착이란 공동목표를 추구하는 것은 김 대통령의 역량 때문”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김 대통령의 개인적 희망과 집념은 때론 현실의 딜레마로 이어지기도 했다.

집권 초기 김 대통령은 햇볕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주변국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철저한 예방외교’가 중요하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으나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뒤부터 김 대통령의 발언에서는 자신감이 넘쳐났다.

2000년 9월 11일자 뉴욕타임스와의 회견에서는 “남북간 평화협정 체결이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03년 전에 가능하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정부 당국자들은 이 발언에 대해 상당히 곤혹스러워 했다. 한 당국자는 “이 때부터 정부의 대외정책시스템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성사’에 집중됐다”고 지적했다.

조지 W 부시 미 공화당 행정부가 출범한 뒤에도 김 대통령은 “냉전이 끝을 맺는 외교성과가 금년에 이뤄져야 한다”(2001년 2월 1일6)며 집념을 보였다. 하지만 그 후 남북 및 북-미관계는 침체기에 빠져들었다. 부시 대통령이 지난 해 6월 대북 대화를 공식 선언한 뒤에도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다.

그동안 북-미대화 재개와 관련해 김 대통령은 여러 차례 미국의 노력을 촉구했다. 이런 김 대통령의 발언에는 다분히 ‘남북 및 북-미 관계 정체의 근본 원인이 미국 측의 무성의 때문’이라는 원망이 깔려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김 대통령의 다분히 김 위원장에게 ‘우리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김 위원장이 이런 구애(求愛)의 몸짓에 호응하지 않는 바람에 햇볕정책의 딜레마만 더욱 깊어졌다”고 말했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클린턴 미련’못버려…정부, 부시취임후 ‘달라진 美國’ 대응못해

햇볕정책의 본격적인 퇴조는 조지 W 부시 미국 공화당 행정부의 출범(2001년 1월 20일) 과 궤를 같이 한다. 부시 행정부가 견지한 공화당 특유의 대북 강경 자세가 남북 및 북-미 관계 진전에 장애로 작용한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대북정책과 관련해 부시 행정부가 비판을 받을 부분도 있는 게 사실이다. 재작년 10월 당시 빌 클린턴 민주당 행정부가 반세기 동안의 대북 적대관계를 청산한다고 공식 선언한 ‘북-미 공동 코뮈니케’를 사실상 파기한 것이 대표적인 예.

전문가들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교 정상화 일보 직전까지 갔던 북한측 입장에서는 ‘정부가 바뀌었으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부시 행정부의 요구를 ‘국가 간 약속의 일방적 파기’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달라진 미국’이라는 냉엄한 국제정치 현실에 나름의 해법을 갖고 적절히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속수무책으로 햇볕정책의 약효를 떨어뜨렸다는 점이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정부 내에서는 ‘미국 민주당이 재집권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미련이 계속 남아 있었다”며 “정부와 여당의 이런 태도가 부시 행정부에 ‘한국 정부가 북한 입장만 대변한다’는 불신감을 안겨줬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랠프 코사 미 국제전략연구소(CSIS) 퍼시픽포럼 소장은 최근 한 기고문에서 “북한이 (미국의) 대화 요구에 계속 불응하고 있는데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미국에 대해 회담 재개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9·11 테러사태 이후 한미 외교 실무 현장에서도 우리측의 거듭되는 ‘북-미 대화 재개 노력 요구’에 대해 미국 측이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서울의 한 외교소식통은 전했다.

결국 정부 안팎에서 “우리가 북한과 미국의 중간에 서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미국과의 새로운 팀플레이로 햇볕정책의 활로를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의식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악의 축’이란 돌이킬 수 없는 발언이 나온 뒤였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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