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 또 失機하지 말라

  • 입력 2002년 2월 9일 16시 17분


엊그제 박길연(朴吉淵)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대사가 “북한은 미국과 대화를 재개할 준비가 돼 있다”고 천명한 것은 얼마 전까지도 ‘미국과 전쟁도 치를 수 있다’는 듯이 나오던 것에 비하면 한결 진일보한 태도다. 한동안 강경론만 쏟아내던 미국도 때마침 “북한과 시간 장소에 관계없이 대화에 나설 용의가 있다”는 애초 입장을 다시 확인한 만큼 양측은 이제 차분한 자세로 실질적인 대화재개 준비에 나서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열쇠는 역시 북측이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북측이 이번에도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를 대미(對美) 카드로 활용하면서 벼랑끝 전략을 구사하려 든다면 이는 큰 오산이자 실책이 아닐 수 없다. 현 부시 미 행정부는 전임 클린턴 행정부와 비교할 때 북측을 바라보는 기본 시각과 입장이 너무나 현격하게 다르다는 사실이 이제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히려 북측이 이번 사태를 그동안 정체상태를 면치 못했던 북-미관계 및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북-미관계는 클린턴 민주당 정부 말기에 양측이 공동 코뮈니케를 마련하는 등 획기적인 진전의 계기를 마련했음에도 미 대선에서 공화당이 승리하면서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갔던 전례가 있다. 이는 북-미협상 과정에서 북측의 자세 변화가 너무 늦게 나왔기 때문이라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번에도 북측이 그 때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북측이 먼저 변화된 자세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북측은 또 남북관계 개선에도 성의를 보여야 한다. 미국이 이번에 북측에 대해 전에 없이 강경하게 나온 배경에는 남북관계가 작년 내내 부진을 면치 못했다는 사실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남북관계의 부단한 진전은 북측에 대한 국제적 신뢰도를 높여주는 것은 물론 그들의 체제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북측은 알아야 한다.

우리 정부는 20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 전까지 미국측과 어긋난 대북(對北) 공조체제를 완전 복원하는 동시에 북측에 대해 북-미대화 및 남북대화를 촉구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안게 됐다. 본란에서 이미 수 차례 지적했듯이 한미관계는 소홀히 한 채 오로지 북측만 바라보던 저간의 태도부터 바로잡아야 하겠지만, 정부는 북측이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다시 들고나올 가능성에 대해서도 예의 주시해야 한다. 남북한 및 한반도 주변국 관계에서 우리가 한치라도 소외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