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문 비리-부정…낙마…권력기관 끝없는 추락

  • 입력 2001년 12월 30일 18시 07분


2001년은 권력기관들이 어느 해보다 깊은 상처를 입은 한 해였다. 임기말 권력누수 현상까지 겹쳐 곳곳에서 불거진 각종 ‘게이트’와 부정 비리 연루의혹으로 권력기관들이 여론의 도마에 오른 것은 물론 핵심인사들이 줄줄이 불명예 퇴진했기 때문이다. 서슬이 퍼렇던 청와대 국정원 검찰 경찰 국세청 등 5대 권력기관의 올 한 해 ‘오욕의 소사’를 정리해 본다.

▽청와대〓한나라당 남경필(南景弼) 대변인은 30일 ‘청와대(靑瓦臺)인가 회와대(灰瓦臺)인가’라는 보도자료에서 “청와대가 위로는 수석비서관에서 아래로는 청소부에 이르기까지 온갖 비위에 연루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진승현 게이트’와 관련해 구속된 신광옥(辛光玉) 전 민정수석비서관, ‘수지 김 사건’의 주범 윤태식(尹泰植)씨가 대주주인 ‘패스21’의 주식을 받은 경호관, ‘이용호 게이트’와 관련해 2000만원을 받은 전 행정관, ‘정현준 게이트’와 관련해 4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던 8급 기능직 직원의 비리를 열거했다.

민주당 쇄신 파동의 여진 속에 나온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민주당 총재직 사퇴와 박지원(朴智元) 전 정책기획수석비서관의 퇴진도 청와대로선 아픈 기억 중 하나로 꼽힌다.

▽국정원〓올해처럼 국정원 고위 간부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찬 적도 없었다. 진승현, 정현준씨 사건으로 구속된 김은성(金銀星) 전 제2차장, 김형윤(金亨允) 전 경제단장, 정성홍(丁聖弘) 전 경제과장이 그 주인공.

아내를 살해한 파렴치범을 대공 사건으로 위장했던 87년 ‘수지 김 사건’도 최고 정보기관의 위상을 크게 실추시켰다.

더구나 뒤늦게 진상을 가리기 위한 재수사마저 중단시킨 혐의로 김승일(金承一) 전 대공수사국장이 구속돼 국가기관의 도덕성을 의심케 했다.

수정 없이 통과되는 게 관례였던 국정원 예산이 국회 심의에서 논란 끝에 처음으로 80억원 삭감된 것도 국정원의 위세가 전 같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는 평을 낳았다.

▽검찰〓박순용(朴舜用) 신승남(愼承男)씨 등 전현직 검찰총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잇따라 제기될 정도로 정치권에선 올해 내내 검찰의 공정성을 둘러싼 공방이 끊이지 않았다. 안동수(安東洙) 법무부장관이 ‘충성 메모’ 파문 끝에 43시간 만에 물러난 것도 이런 시비를 부추긴 한 요인이었다.

이용호 게이트와 관련해 임휘윤(任彙潤) 전 부산고검장, 임양운(林梁云) 전 광주고검차장이 옷을 벗고, 이덕선(李德善) 전 군산지청장이 불구속기소된 것도 검찰로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특히 이용호 게이트에 대해서는 작년 ‘옷 로비 사건’과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에 이어 사상 세번째로 특별검사제가 도입됨으로써 검찰은 당분간 ‘수사 주체’에서 ‘수사 객체’로 바뀌는 수모를 감수해야 할 처지다. 특별검사팀은 신승남 총장의 동생에 대해 계좌추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찰〓이무영(李茂永) 전 경찰청장이 ‘수지 김 사건’ 재수사를 중단시킨 혐의로 구속되는 등 경찰 역시 홍역을 치렀다. 허남석(許南錫) 전 서울경찰청 정보1과장은 이용호 사건에 연루돼 한때 직위해제 위기까지 갔으나 감봉 1개월에 경무과 대기발령을 받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국세청〓“내가 죽으면 애국가를 4절까지 불러라”고 호언했던 안정남(安正男) 전 국세청장은 건설교통부장관으로 승진했으나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서울 강남의 가족 타운 조성 의혹 등이 불거지자 결국 자진 사퇴했다.

국세청은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해 국회에서 한나라당과 자민련 의원들로부터 ‘정권의 시녀’라는 등의 혹독한 비난세례를 받기도 했다.

<송인수기자>i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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