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장관급회담 금강산개최' 수용 논란

  • 입력 2001년 10월 30일 18시 41분


《6차 장관급회담의 개최장소를 둘러싸고 북한측과 밀고 당기기를 계속해온 정부가 돌연 북측의 주장을 수용하고 나섬으로써 다시 한번 ‘원칙 없는 방향선회’란 여론의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특히 북한이 미국의 대 테러전쟁을 트집잡아 ‘안전’을 이유로 금강산을 회담장소로 고집해온 점에 비추어 볼 때 설사 회담이 열린다고 해도 과연 실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는 회의감도 증폭되고 있다.》

▽불투명한 회담 전망〓정부가 지금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이번 회담에서 과연 성과를 얻을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명분도 포기하고 금강산개최 요구를 수용한 마당에 성과마저 빈약할 경우 향후 추진하려는 각종 대북지원책도 여론의 반대에 부닥칠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정부 당국자들 자신이 이번 회담의 성과에 대해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북한측은 ‘남한 정세가 불안정하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이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4차 이산가족 교환방문 장소로 북측이 불안정하다고 강조해온 서울을 쉽게 수용할 가능성은 별로 크지 않은 셈이다.

또 북한이 최근 우리 정부의 경계강화조치 등 정세를 트집잡아 작년 12월에 열린 4차 장관급회담 때처럼 우리의 국방백서에 나온 ‘주적(主敵)’ 개념을 문제삼고 나올 경우 상황은 더욱 꼬일 가능성이 크다.

10월 중 남북관계 일지
12일북한 조평통 담화:4차 이산가족 교환방문, 태권도 시범단 교환 연기 발표
12일홍순영 통일부장관:북측의 일방연기 항의, 즉각적인 합의이행 촉구
13일김택룡 금강산당국회담 북측 단장:금강산당국회담 금강산 개최 제의
16일박창련 남북경협추진위 북측 단장:2차 남북경협추진위 금강산 개최 제의
16일홍순영 통일부장관:금강산당국회담 설악산개최, 경협추진위 서울 개최 제의
18일김영성 장관급회담 북측 단장:6차 장관급회담 금강산 개최 주장
22일홍순영 통일부장관:6차 장관급회담 평양개최 촉구
23일김영성 장관급회담 북측 단장:6차 장관급회담 금강산 개최 거듭 주장
24일홍순영 통일부장관:6차 장관급회담 평양 또는 묘향산 개최 제의
25일김영성 장관급회담 북측 단장:6차 장관급회담 금강산 개최 고수
30일김홍재 통일부 대변인:6차장관급회담 금강산개최 검토

정부는 이에 따라 새로운 의제를 테이블에 올려놓기보다는 일단 4차 이산가족 교환방문 및 2차 경협추진위원회 등 남북이 5차 장관급회담에서 합의한 뒤 무산된 행사일정을 재조정하는 데 우선 중점을 둘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강산 수용의 문제점〓정부는 북한이 남한의 ‘비상경계태세’를 이유로 4차 이산가족 방문단교환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이후 북측에 대해 강경한 자세를 견지해오다가 돌연 ‘명분보다 실리’라는 애매한 논거를 앞세워 입장을 선회했다.

물론 장소문제로 회담이 열리지 못하는 것이 장기적인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정부의 판단은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한 것.

그러나 단호한 대처와 국민정서를 앞세워 금강산개최 수용 결정 하루 전인 29일까지만 해도 “북한측의 태도 변화나 국제정세의 변화가 있어야 장관급회담 개최문제를 고려하겠다”는 강경입장을 보였던 점 때문에 ‘졸속’이란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 같다.

게다가 정부가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북측에 단호한 입장을 보이다가 뚜렷한 이유 없이 대북정책을 변경한 데 대해 ‘남북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한나라당 반발〓박명환(朴明煥)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은 30일 홍순영(洪淳瑛) 통일부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홍 장관이 평소 줏대 있는 줄 알았는데 다시 봐야겠다”고 힐난했다.

그는 또 “회담은 저쪽에서 필요해서 하는 것인데, 뭐 받아낼 게 있다고 우리가 허겁지겁 따라가느냐”고 비난했다.

권철현(權哲賢) 대변인은 논평에서 “‘남한은 불안하니 금강산에서 회담을 해야 한다’는 북한의 억지 주장에 펄쩍 뛰었던 정부가 결국 꼬리를 내렸다”며 “이산가족상봉 시행과 회담 교대 개최 원칙을 관철시키지 못한다면 아예 회담을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용갑(金容甲) 의원 등도 “정부가 국민 자존심을 짓밟았다. 언제까지 굴욕적 행태를 반복할 것이냐”고 비난을 퍼부었다.

<김영식기자>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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