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꽁치어장 앉아서 당하나

  • 입력 2001년 10월 7일 19시 00분


러시아와 일본이 우리 어선의 남쿠릴열도 조업을 금지하기로 합의했다는 일본 언론들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우리 꽁치 원양어업의 파산은 물론이고 외교적으로도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남쿠릴열도 수역은 우리나라 연간 꽁치 어획량의 30∼40%를 충당해 온 어장이다. 그런 어장에서 조업을 할 수 없다면 우리의 관련 업계는 당장 파산 위기에 몰릴 수밖에 없다. 업계측은 현재 대체어장을 마련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상태라고 주장한다. 더구나 일본 정부는 또 다른 꽁치어장인 산리쿠 주변 수역에 대해서도 우리의 조업을 허용치 않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정부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 91년 어업협정을 맺은 한-러 두 나라는 남쿠릴열도에서의 조업문제를 매년 협의해 왔다. 이에 따라 올해의 경우 이 수역에서 한국어선이 1만5000t의 꽁치를 잡기로 합의했고 내년도 조업문제도 곧 협의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같은 전례만 믿은 셈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러시아와 일본이 남쿠릴열도에 제3국의 조업금지 방안을 논의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와도 “한국측에 피해가 안 가도록 하겠다”는 러시아측 말만 강조했다고 한다. 그러나 남쿠릴열도는 일-러간 영토분쟁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조업문제에 관한 한 두 나라가 담합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은 오래 전부터 나오고 있었다.

우선 일본과 러시아의 담합이 사실이라면 이는 큰 나라답지 않은 졸렬한 처사다. 러시아측이 일본으로부터 입어료를 보상받는 대신 우리 어선의 출입을 금지시킨다면 그동안 어렵게 쌓아온 양국간의 신의는 어떻게 되겠는가. 특히 일본 정부는 의도적으로 한국 어선의 꽁치 조업을 배제하려 하는 등 남의 뒤통수만 치는 전형적인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수에 우리만 당하는 꼴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방한(訪韓)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일본과 러시아는 국제사회의 신의와 체면을 살리기 위해서도 스스로의 이익만 챙기려는 그런 비열한 담합은 하지 말아야 한다.

문제가 크게 불거진 후에야 허겁지겁 ‘진화’에 나서는 외교로는 국가이익을 제대로 챙길 수 없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사안은 모든 외교 경로를 동원해 미리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이번에는 정부가 온통 남북한 문제를 비롯한 국내 문제에만 몰입해 있다가 멍하게 당하는 것은 아닌지 깊이 반성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적극적인 외교적 대응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