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수가족 중국탈출 17일]열차에 숨어 몽골 잠입후 한국재회

  • 입력 2001년 7월 1일 18시 36분


'길수가족 구명운동본부' 관계자가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수술복장을 한 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길수가족 구명운동본부' 관계자가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수술복장을 한 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장길수군 가족’이 한국에 입국하기까지의 숨막히는 17일간이 공개됐다.

‘길수가족 구명운동본부’의 문국환(가명) 사무국장은 1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경찰서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들 일가 7명이 지난달 14일 베이징(北京)에 도착해 26일 ‘죽을 각오’를 하고 망명신청을 위해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베이징 사무소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했다. 또 이들과 다른 선택을 하고 몽골을 경유해 29일 한국으로 입국한 길수군의 친형 한길씨 등 3명의 ‘중국탈출기’도 공개됐다.

99년 8월 길수 일가를 처음 만나 최근까지 돌봐왔던 문 국장은 이들에 대한 지원으로 수천만원의 빚까지 지게 된 그동안의 과정을 설명한 뒤 “저로서는 이게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14일 중국에 입국했다”며 탈북경위를 언급했다.

문 국장의 베이징 도착 당일인 14일. UNHCR 베이징 사무소 대표 콜린 미첼을 면담해 이들의 구명을 요청했으나 그는 “제3국으로 가는 것을 알아보라”는 대답만 할 뿐이었다.

랴오닝(遼寧)성의 한 은신처에 모인 길수 가족 10명은 이후 5일 동안 한국 입국을 위한 경유지를 몽골이냐, UNHCR냐를 놓고 공방전을 벌였다고 한다.

“가족들은 지난해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왔다가 강제소환됐던 7명의 탈북가족의 경우와 같이 자신들도 같은 처지가 될 것이라는 위협을 느꼈던 거죠. 그래서 몽골을 경유해 한국에 가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 정태준씨(68)가 “우린 이래저래 죽은 목숨이나 같으니 세계만민 앞에 외치다 죽겠다”는 결심을 말하자 29일 입국한 3명을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이 UNHCR사무실에 26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게 됐다고 문 국장은 전했다.

“유엔사무소에는 외국인들만의 출입이 허락되죠. 저와 통역사, 그리고 일본 ‘아시아프레스’의 프리랜서 기자인 이치마루 등은 경비원들과 이미 얼굴을 익혀둔 상태라 길수가족들을 세팀으로 나누어 한사람이 2, 3명씩 데리고 들어갔죠. 다행히 아무 문제없이 들여보내 주더군요.”

한편 몽골을 경유지로 택한 나머지 3명은 23일 베이징 100㎞ 전방에서 검문에 걸리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24일 밤 9시경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 화물열차에 숨어들어 중국국경을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안기자>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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