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이산상봉]생존확인 69년 납북 KAL기 승무원가족 표정

  • 입력 2001년 2월 27일 18시 41분


납북KAL기 기장 유병하씨부인 엄영희씨
납북KAL기 기장 유병하씨
부인 엄영희씨
《69년 대한항공(KAL)기 피랍사건으로 납북된 승무원들이 모두 생존해 있는 것으로 당시 여승무원 성경희씨(55)에 의해 알려지자 27일 이들의 남측 가족들은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모습이었다. 이들은 “어쩌면 죽기 전에 다시 한번 볼 수 있겠다”는 희망과 함께 “이제 상처가 겨우 아물려고 하는데…”라며 허탈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당시 KAL기 부기장 최석만(崔石滿·71)씨의 큰딸 은주(銀珠·45·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씨는 가슴이 메어 두 동생 은희(銀喜·44·대만거주) 은실(銀實·40·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씨에게 전화도 못했다고 한다.

“아버지를 그리다 2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장순옥·당시 63세) 생각에 그저 눈물만 나왔다”는 최씨는 “그나마 돌아가시기 직전 일본에서 온 친지가 평양TV 좌담프로에 나온 아버지를 보았다는 소식을 듣고 살아 계시다는 것을 확인했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아버지는 북한 공군 대좌(대령)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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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3형제를 ‘삼공주’라 부르며 정을 쏟아 부었던 아버지였건만 생존 소식을 듣고도 가족은 혹시라도 누가 될까 싶어 이산가족 상봉 신청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은주씨는 “15살 중학생 시절 헤어진 아버지를 이제 만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작년에 칠순을 맞았던 아버지의 건강만을 빌 뿐”이라며 눈가를 훔쳤다.

또 납북 당시 여승무원 정경숙씨(55)의 생존소식을 전해들은 오빠 현수씨(玄洙·70·경기 고양시 일산구 대화동)는 “경숙이를 부르며 눈을 감지 못하던 어머니가 이 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기뻐했을까”라면서 안타까워했다.

‘막내딸을 만나기 전에는 절대로 눈을 감을 수 없다’던 어머니 김금자씨는 불과 두달여 전인 지난해 12월5일 92세로 세상을 떴다. 현수씨는 “경숙이의 납북 후 생존 여부라도 확인하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었다”며 “몇년 전 남파간첩 출신이 쓴 책을 통해 함께 납북됐던 성경희씨가 ‘구국의 소리’ 방송에서 일한다는 대목이 나와 경숙이도 같이 있겠거니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성씨와 창덕여고 동기생인 정경숙씨는 연세대 도서관학과를 졸업하고 성씨보다 한 해 뒤인 69년 대한항공에 입사했었다.

함남 홍원이 고향인 정씨 가족은 해방 직후 6남매중 장남인 현수씨가 먼저 월남하고 어머니 김씨가 경숙씨와 경희(56·미국 거주) 경자(59·서울 강동구 천호동)씨 등 세 자매를 데리고 내려온 뒤 뒤늦게 합류하려던 아버지와 두 형제가 6·25전쟁으로 내려오지 못해 이산가족이 됐다. 그러다 경숙씨마저 납북되는 기구한 운명을 겪었다.

현수씨는 “경숙이는 막내인 데다 남매들 사이에서도 특히 총명해 귀여움을 독차지했었다”며 “사회 초년생으로 아직 학생티도 벗지 않았던 앳된 동생이 32년이 흐른 지금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지 너무 궁금하다”고 말했다.

한편 당시 납북된 KAL기 기장이었던 유병하씨(69)의 부인 엄영희씨(67)는 “지금 와서 찾아 나선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나하고는 13년간 살았지만 북한에서의 생활은 벌써 30년이 넘었습니다”라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엄씨는 이번에 방북신청도 하지 않았다. 대신 아들이 신청했다. 북한에 정착해 새 가정을 꾸려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를 남편이 곤란해질까 염려됐기 때문이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의 가구주 이름은 32년 전과 똑같은 ‘유병하’.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홀로 2남1녀를 키워낸 엄씨는 남편과 함께 살던 서울 용산을 수십년째 떠나지 않고 있다.

“이상하게도 헤어진 후 한번도 꿈에 나타나지 않던 남편이 그저께 꿈에 나타났으나 아무 말없이 사라져 궁금하게 생각했는데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하려고 그랬던 모양”이라고 씁쓰레한 웃음을 지은 엄씨는 “현재로선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선뜻 만날 용기가 없다”고 말했다.

<허문명·성동기·민동용기자>angelhuh@donga.com

▼납북 승무원 4명 모두 생존▼

69년 납북된 대한항공(KAL) YS11기의 기장과 부기장, 승무원 2명이 모두 북한에 살아있는 것으로 27일 밝혀졌다. 그러나 당시 북한에서 돌아오지 않은 승객 7명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다.

당시 여승무원인 딸 성경희(成敬姬·55)씨를 26일 평양 고려호텔에서 만난 성씨의 어머니 이후덕(李後德·77)씨는 이날 “딸로부터 기장 유병하(柳炳夏)씨와 부기장 최석만(崔石滿)씨가 현재 북한 공군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최씨는 1남1녀의 자녀를 두고 있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이씨는 또 동료 여승무원인 정경숙(鄭敬淑)씨도 평양에서 성씨 집 부근에 살며 서로 자매처럼 지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한편 북측 김경락(金京落)단장은 이날 오전 대한적십자사 서영훈(徐英勳)총재를 예방해 “남쪽에서 전향을 했다고 하지만 강제로 전향한 30여명과 이들의 가족들이 원한다면 송환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또 “남측 언론이 ‘국군포로 억류’라는 말을 쓰는데 그 사람들은 국군이었으나 의거입북해 잘 사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서총재는 이에 대해 “장기수 문제는 국회와 국민의 여론에 따라 해결할 문제”라고 답하고 “오늘처럼 상봉하는 것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므로 앞으로 서신을 통해 생사를 확인하고 면회소를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3차 이산가족 교환방문단은 이날도 각각 서울과 평양에서 두 차례 상봉시간을 더 갖고 뜨거운 혈육의 정을 나누었다.

이들은 28일 숙소인 서울 잠실롯데월드호텔과 평양 고려호텔 앞에서 30분 정도 석별의 시간을 가진 후 아시아나 항공기를 이용해 귀환한다.

<김영식기자·평양〓공동취재단>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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