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한나라당 '안기부돈 940억 국고환수소송' 공방

  • 입력 2001년 1월 26일 18시 42분


26일 여야 지도부는 국정 정상화 방안을 논의하며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26일 여야 지도부는 국정 정상화 방안을 논의하며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안기부 돈 선거자금 유입’과 관련, 정부가 한나라당을 상대로 낸 940억원의 국고환수소송을 둘러싼 양측의 법리 논쟁이 치열하다.

그러나 민주당은 소송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한 발 물러서 있다. 쟁점별로 정부와 한나라당의 주장을 점검해 본다.

▽신한국당의 공동 불법행위인가〓정부는 우선 96년 15대 총선 당시 강삼재(姜三載)신한국당 사무총장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신한국당도 공동책임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법인의 경우 대표자나 이사가 직무 수행 과정에서 타인에게 끼친 손해에 대해서도 연대배상을 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강의원이 김기섭(金己燮)전 안기부 기조실장과 예산 횡령을 공모했다는 것조차 밝혀지지 않았는데 무슨 공동책임을 묻느냐고 반박하고 있다. 수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소송부터 제기하는 것은 억지라는 것이다.

▽정당을 ‘사용자’로 볼 수 있나〓강의원은 ‘피고용자’이며, 신한국당은 강의원을 고용한 ‘사용자’로서 배상책임이 있다는 게 정부측 주장. 피고용자가 불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끼쳤을 때 사용자에게 배상책임이 있다는 민법 756조 규정을 원용한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안상수(安商守)의원은 “정당과 정당인의 관계를 사용자―피고용자 관계로 본 예는 전무하다”고 반박했다.

법조계의 의견도 엇갈린다. 서울지법의 한 판사는 “정당의 사무직원이라면 몰라도 정당인의 경우는 다를 수 있다”고 밝힌 반면 다른 판사는 “정당과 정당인의 관계를 일반 민사상의 고용자―피고용자 관계로 보는데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상대 국고환수소송 쟁점

쟁점정부한나라당
정당의 공동책임 여부불법공동행위자로 간주된다강삼재의원의 공모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정당을 사용자로 볼수 있는지 여부당직자의 불법행위는 사용자인 정당에도 배상책임이 있다정당은 민법상 사용자로 볼 수 없다
한나라당의 책임승계여부신한국당의 모든 권리 의무가 승계됐다신한국당과 ‘꼬마’ 민주당의 합당으로 책임을 승계할 의무 없다

재판 과정에서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이 증인으로 출석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임호범(任浩範)변호사는 “사용자가 피고용자에 대해 최대의 주의 의무를 다했다면 면책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당시 사용자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신한국당 총재인 김전대통령의 증언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신한국당의 책임까지 지나〓정부는 “한나라당은 97년 11월 신한국당과 ‘꼬마’ 민주당이 합당해 설립한 정당으로 신한국당의 권리 의무를 승계했다”며 지금의 한나라당에 국고환수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한나라당은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는 형식을 밟았기 때문에 신한국당 때의 일까지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서울지법의 한 판사는 “한나라당을 만들 당시 신한국당의 업무를 승계한다는 규정 등이 있으면 두 단체의 동일성이 인정된다”며 “그러나 새로 창당하는 형식으로 조직 구조 등이 기존과 전혀 새로운 것이라면 결과가 달라질 수는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꼬마’ 민주당 사무처 직원들이 한나라당을 상대로 낸 퇴직금 청구소송에서 두 단체의 승계를 인정한 사례가 있다”고 덧붙였다. 합당 당시 한나라당은 여의도 중앙당사와 충남 천안 연수원 등 신한국당의 재산을 모두 물려받았고, 사무처 요원들도 그대로 유지됐다.

<김정훈·이정은기자>jnghn@donga.com

▼한나라당 재산 1268억▼

정부가 한나라당을 상대로 940억원의 국고환수 소송을 제기하면서 한나라당의 재산이 어느 정도인지 관심사다.

한나라당이 작년 초 중앙선관위에 신고한 1999년 회계보고에 따르면 보유 부동산의 가치는 1268억원. 이는 서울 여의도 중앙당 당사와 충남 천안 연수원의 공시지가를 합친 금액. 두 부동산의 토지가가 548억원이고, 건물가는 720억원이다.

정부로선 소송에 이길 경우 한나라당의 재산을 처분해 소송 가액에다 이자(연 5%)까지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셈이다. 또 한나라당은 매년 약 104억원의 국고보조금과 후원금 등 고정 수입이 연간 200억원(1999년 기준)에 이르러 이를 압류할 수도 있다. 만약 그럴 경우 한나라당은 말 그대로 길거리에 나앉게 된다. 1999년 회계보고에서도 차입금이 약 90억원에 이르는 등 재정이 열악한 형편이어서 당사를 뺏기거나 국고보조금 등을 압류 당하면 달리 융통할 자금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송인수기자>issong@donga.com

▼정부 "횡령한 나랏돈 환수는 당연"▼

국가예산이 횡령된 사실을 알고도 환수소송을 내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부의 직무유기다. 물론 횡령 가담자에 대한 조사가 미비해 아직 실체가 불분명한 것은 사실이지만 시효(5년)가 1월말로 만료되는 상황이어서 소송을 낸 것이다. 소송 수행은 직접적 피해자인 국가정보원에서 하게 된다. 10억원 이상의 소송에 대해서는 법무부의 사전 승인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승인해 줬다. 공동불법행위인지, 피고용자의 불법행위에 대한 사용자 책임인지 여부는 추가조사를 통해 밝혀낼 것이다. 두 가지 모두 분명하게 확인되지 않을 때를 대비해 예비적으로 부당이득반환청구도 했다.

<김정훈기자>jnghn@donga.com

▼한나라당 "신한국당 일 왜 책임져야 하나"▼

무엇보다 가장 큰 전제가 되는 불법행위 자체에 대해 입증이 되지 않았다. 또한 강삼재(姜三載)의원과 과거 신한국당의 관계가 정부측 주장대로 사용자와 피고용자 관계라고 하더라도 사용자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강의원의 행위가 불법행위였다는 것을 당에서 알았어야만 당에 사용자의 감독책임을 물을 수 있다. 당시 당총재는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이었으므로 김전대통령이 감독책임을 소홀히 했다는 사실을 정부측에서 입증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신한국당의 재산을 모두 인수했다 하더라도 신한국당 때 있었던 일까지 책임을 져야하는지도 분명히 따져봐야 한다.

<선대인기자>eod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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