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변해야 산다/대통령]'나홀로' 버리고 막힌 귀 열때

  • 입력 2001년 1월 5일 18시 56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지난해 남북정상회담과 이산가족상봉, 노벨평화상 수상 등 잇단 호재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지지율이 떨어지는 곤경을 겪었다. 말할 것도 없이 어려워진 경제상황이 주요인이었다.

연말연시를 전후해 김대통령이 거듭 “경제상황이 악화된 데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 국민에게 죄송하다”며 경제에 전념하겠다고 다짐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여권 인사들의 주 관심사는 정계개편이나 개헌, DJP공조 등 정치인 것처럼 보인다.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맞춰 정계에 큰 변화가 있지 않겠느냐는 여권 인사들의 은밀한 기대도 감지된다.

 신년특집 2001 변해야 한다
- 변해야 할 한국사회 7대집단 1위 정치인
- 고위관료/대통령 앞이라도 "NO" 말하라
- 재벌총수/'황제경영'으론 세계1등 못해
- 검찰/'시녀服' 벗고 법복을 입어라
- 대통령/'나홀로' 버리고 막힌 귀 열때
- 언론/'정치권 입김' 단호히 배격을

이 때문에 정부 여당이 ‘진정으로’ 경제에 전념할 자세가 되어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올 하반기부터 경제상황이 좋아질 것이라고 얘기해도 이를 믿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은 이같은 불신에 근거한다.

게다가 김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4일 영수회담은 사실상 다투기만 하다가 끝나 버려 오히려 정국불안만 심화시켰다. 여권 관계자들이 흔히 하는 말처럼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고 한다면, 김대통령 또한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오히려 김대통령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여야 관계가, 정치가, 그리고 경제가 바로 서려면 먼저 김대통령이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김대통령이 원내 소수당을 이끌고 있으며, 지금은 임기 절반을 넘긴 시점이라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고려대 함성득(咸成得)교수는 “대통령 임기와 개혁의 강도는 비례한다. 즉 임기가 길면 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고, 임기가 짧으면 개혁을 하다가 자칫 무리를 할 수 있다”고 전제하고 “김대통령은 임기(5년)에 비해 의욕이 너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많은 부작용이 빚어졌다는 지적이다.

함교수는 “김대통령은 이제 일을 확대하기보다는 한두 가지 과제에 집중하며 연착륙을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기 논리’를 고집하는 김대통령의 스타일도 달라져야 한 것으로 꼽힌다.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지난해 말 정부 스스로 경제가 위중하다고 인정하고 당정쇄신을 한다고 했을 때 국민은 당장 경제팀 문책 등의 가시적 조치를 생각했을 것”이라며 “그런데도 여태까지 아무 조치가 없으니 실망이 뒤따르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시스템에 의한 국정운영보다는 측근 위주의 ‘인치’에 의존하는 것도 김대통령이 당장 고쳐야 할 점으로 거론된다.

김대통령은 지난해 민주당 권노갑(權魯甲)전 최고위원을 2선으로 물러나게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 바 있으나, 여권 내부사정에 정통한 인사들은 “국정 운영의 큰 틀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아직도 김대통령에게 가감 없이 민심을 전달하고, 직접 조언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극히 제한돼 있다는 얘기다.

청와대나 당이나 내각을 각자의 기능과 역할에 따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보다는 김대통령이 직접 나서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는 것이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사람들의 창의성과 자발성을 억누르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윤승모기자>ysmo@donga.com


▼김용태 前비서실장 충고…많이 들을줄 알아야▼

김영삼(金泳三)정권에서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김용태(金瑢泰) 전 의원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임기 후반 국정운영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조언을 했다.

“대통령도 회사와 같이 전문경영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대통령이 혼자서 모든 것을 다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는 일단 경제팀에 맡기고, 대통령이 컨트롤하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

대통령 비서진은 모든 정보를 가감없이 대통령에게 보고해야 한다. 관료는 관료체제 나름대로의 폐쇄성이 있기 때문에 곁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들이 폭넓게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경제팀도 자신이 모르는 함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별도로 학계나 재계의 스태프를 구성해 대통령에게 보고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과거 비서실장을 역임했을 때 이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김대통령은 ‘내가 잘 알고 있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많이 들을 줄 아는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지금 현 정권은 참으로 어려운 상태이다. 인기도로 따지면 최하위로 과연 난국을 수습해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민에게 믿음을 주어야 한다. 믿음을 주려면 대통령이 말을 너무 많이 해서는 안된다. 말이 많으면 현재의 상황을 모면하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김대통령은 지역화합을 이룰 수 있는 가장 좋은 여건을 갖고 있었는데, 아직 그게 제대로 되지 않아서 아쉽게 생각한다. 특정지역이 국가기관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는 게 국민의 인식인데, 최근의 경찰인사는 참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긴 것이다.”

김 전의원은 “사회 전반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 대통령의 가장 큰 덕목”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영식기자>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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