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바라는 국정개혁]DJ에게 보내는 각계소리

  • 입력 2000년 12월 8일 18시 33분


《경제 위기에 여권의 난조까지 겹쳐 국정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8일 노벨상 수상을 위해 출국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도 귀국 후 국정개혁을 약속, 그 내용과 강도 폭 등이 새로운 국민적 관심사로 부상했다. 국민이 바라는 국정개혁은 과연 어떤 것인지,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토대로 정리했다.》

▽대통령부터 변해라〓대다수 전문가들은 위기 극복의 첫 단계로 김대통령의 인식 변화를 꼽았다. 김대통령 스스로 위기의 실상을 깨닫고 직접 당정(黨政)을 진두지휘하며 난국 수습에 나서야 정국의 꼬인 매듭을 풀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김대통령의 책임 의식 요구도 많았다. 국회법 날치기나 검찰총장 탄핵안 처리 무산 때처럼 김대통령이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식으로 대처하면 위기 극복이 어렵다는 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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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 이석연(李石淵)사무총장은 “당정 개혁 운운하는데, 솔직히 대통령이 변하지 않는 상태에서 당정만 바꿔서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며 “대통령이 변하지 않으면 시민단체로선 정권퇴진 운동까지 나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측근 정치 청산하라〓현 정부의 인재 등용의 문제점을 꼬집는 제언도 많았다. 한마디로 권력 실세들 주변 인물만 중용하지 말고 현 정부를 비판했던 인사까지 포함해 폭넓게 발탁하라는 당부였다.

권노갑(權魯甲)최고위원의 2선 퇴진 논란으로 불거진 민주당 내 계파 갈등에 대해서도 부정적 여론이 팽배했다. 국민은 직장을 잃느냐는 갈림길에 처해 있는데, 정권 책임자들이 ‘친권(親權)’이다, ‘반권(反權)’이다 하며 세력 다툼에만 빠져 있을 수 있느냐는 것.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손봉숙(孫鳳淑)이사장은 “김대통령이 야당 시절에는 몇몇 가신(家臣)들만 데리고도 당 운영이 가능했겠지만, 지금 한 나라를 경영하는 데에는 그들만으로는 안된다”며 “좀 더 광범위하게 인재를 써서 전문적이고 중립적인 당정을 구성하는 게 좋겠다”고 충고했다.

▽경제 살리기 정치를 하라〓전문가들이 꼽은 국정 쇄신의 키워드는 단연 ‘경제 살리기’였다. 사회 각계의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현 시점에서 정부 여당이 궁극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목표는 경제회복이라는 당부였다.

당정 개편도 경제회복에 초점을 맞춰 추진해야 한다는 견해가 많았다. 경제정책을 책임지고 이끌어 갈 수 있는 실질적 경제 전문가로 진용을 갖추고, 당도 이들의 정책을 보호해줄 수 있는 인사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고려대 함성득(咸成得)교수는 이와 관련해 ‘책임 경제총리제’를 제안했다. 그는 “재경부장관 겸 경제부총리로는 현재의 경제 위기 수습이 어렵다”면서 “국무총리를 실질적으로 경제를 통할할 수 있는 인사로 기용, 그에게 일정 기간 소신있게 경제정책을 추진케 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권력을 위임하라〓내각이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정책을 집행하는 시스템 구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김대통령이 뒤늦게 나서 “앞으로 내가 직접 챙기겠다”고 대처하는 식으로는 문제 수습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박관용(朴寬用)의원은 “권력은 나누어 가질 때 더 커지는 법”이라며 “김대통령이 새롭게 당정을 이끌 인사들과 국민 앞에서 이들에게 실질적 권한 위임을 약속하고 국정 운영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인수기자>issong@donga.com

▼당정 대수술 예고…兩甲 '상응조치'예상▼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8일 출국인사에서 “노벨상 시상식을 마치고 귀국한 뒤 ‘국민 여러분이 바라는’ 국정개혁을 단행하겠다”고 한 대목 중 ‘국민 여러분이 바라는’이라는 표현은 이른바 대통령의 ‘말씀자료’에 잘 쓰이지 않는 표현이다.

여권 관계자들이 연말 당정쇄신이 파격적일 것으로 예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를 “민주당은 물론 야당과 언론의 의견까지 광범위하게 고려하겠다는 뜻을 강조한 말”로 풀이했다. 즉 “당과 정부 청와대 국정원 등 국정 핵심부문의 인물과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쇄신하는 전면개편을 시사한 것 아니겠느냐”고 풀이했다.는 얘기였다.

뿐만 아니라 최근 ‘권노갑(權魯甲) 2선 퇴진론’ 파문의 와중에 다시 갈등관계가 불거진 권최고위원과 한화갑(韓和甲)최고위원에 대해서도 뭔가 ‘상응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유임설과 교체설이 엇갈리던 서영훈(徐英勳)대표의 경우도 갈수록 ‘교체’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벌써 새 대표 후보로 몇몇 인사들의 의중을 타진하고 있는 작업까지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당 안팎에서 일반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대표후보는 신한국당 대표를 지낸 이홍구(李洪九)전 주미대사와 이수성(李壽成)전 총리, 김원기(金元基)민주당고문 등. 그러나 여권 역학구도를 감안하면 당외인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분위기가 강하다.

여권의 한 핵심인사는 “대야관계 개선이 김대통령이 고심 중인 국정개혁의 주요 테마인데 신한국당 출신인 이홍구 이수성 두 사람은 한나라당의 비토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며 “학계 출신 인사를 파격적으로 영입하는 노력도 진행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임동원(林東源)국정원장의 교체론도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민주당의 모 중진의원도 얼마전 여권 핵심인사로부터 의사 타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장이 교체될 경우 한광옥(韓光玉)대통령비서실장이 국정원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이종찬(李鍾贊)전 국정원장이 비서실장으로 발탁될 것이라는 하마평까지 나돈다.

김대통령은 권노갑 한화갑 최고위원의 거취에 대해서도 고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통령이 정동영(鄭東泳)최고위원 등의 문제제기 방식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지 않지만, ‘권노갑 퇴진론’도 모르는 체 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 권최고위원 퇴진이나 ‘양갑(兩甲)’ 동반퇴진 또는 제3의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김창혁기자>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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