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EM이 넘어야할 과제]화려한 만남속 '內實'는 없다

  • 입력 2000년 10월 16일 19시 02분


"민주주의와 인권, 시민의 사회참여, 법의 지배 같은 보편적 가치와 비전을 거부한다면 아시아와 대화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유럽국가)

"그런 가치에 대한 주장이 부당한 내정간섭이 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일부 아시아국가)

제3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 채택될 ASEM 기본문서인 '아시아유럽협력체제(AECF) 2000’에 들어갈 문구를 놓고 최근 아시아와 유럽의 외교실무진이 벌인 논쟁의 한 토막이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서울 ASEM을 준비하는 각종 회의에서 양측간에 종종 이런 상반된 목소리들이 오갔고 그때마다 분위기가 삭막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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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올림픽’으로 불리는 ASEM의 화려함 뒤에는 이처럼 속깊은 고민이 있다. 전문가들은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으로 너무 다른 유럽과 아시아간 협력체인 ASEM은 쉽게 합치되기 어려운 근본적 딜레마를 안고 있다”고 토로했다.

우선 ASEM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 경제위주의 다른 협력체와 달리 '정치대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좀처럼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96년 태국 방콕 제1차 ASEM 회의를 앞두고 일부 아시아국가들은 "인권이나 민주주의 문제 등은 의제로 삼지 말자”고 강력히 요구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 관계자는 "활발한 정치대화를 원하는 유럽과 이를 내정간섭이라며 반발하는 일부 아시아국?@?대립은 ASEM에서 구체적 사업을 결정하는데도 장애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아시아가 유럽보다 지역적 동질성이 떨어지는 데다 목소리를 모아줄 '리더국가’가 없어 '지역간 협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오준(吳俊)외교부 ASEM담당심의관은 "유럽은 유럽연합(EU) 집행위와 의장국이 공동입장을 표명하며 교섭해온 전통이 있는 반면 아시아는 조율된 공동의 입장을 갖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 중국 일본의 이해차이 때문에 효율적인 협의와 성과를 이끌어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것.

마지막으로 한 국가만 반대해도 신규가입이 불가능해 ASEM의 '새 식구’를 맞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도 문제. ASEM 가입을 희망하는 국가는 20여개국. 이들은 지역내 합의와 전체 합의에서 모두 반대가 없어야 회원국이 될 수 있다. 회원국중 1개국만이라도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평소 '견원지간’인 국가를 경계하면 가입이 불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마하티르 모하마드 말레이시아 총리가 있는 한 호주의 ASEM 가입은 어려울 것이라는 게 외교가의 정설이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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