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관계]김정일친서 '모종의 구상' 뭘까?

  • 입력 2000년 10월 11일 19시 32분


《북한의 실질적 2인자인 조명록(趙明祿)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미국 방문을 계기로 북―미 양국이 뿌리깊은 적대 관계를 청산할 필요성에 합의함으로써 관계 정상화가 크게 진척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웬디 셔먼 미 대북정책조정관은 10일 조부위원장이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을 대신해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북―미 관계 개선에 관한 ‘모종의 구상(some ideas)’을 전달했다고 밝혀 김국방위원장이 제시한 ‘보따리’가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결정적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제이크 시워트 백악관대변인은 “김국방위원장의 친서는 사적이고 외교적인 서신이므로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우리는 제안의 일부를 검토중이며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이 지역에서 이미 이룩된 진전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지를 살피고 있다”고 말해 미국이 북측 제안에 흥미를 느끼고 있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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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워싱턴에서는 김국방위원장의 제안이 무엇인지를 알아맞히기 위한 추측이 분분하다.

유력한 관측의 하나는 북한이 94년 제네바 합의를 통해 동의한 뒤 이행을 미뤄 온 상호 연락사무소의 개설과 미국 고위 관리의 방북 초청 등 외교관계 정상화를 향한 일련의 조치를 제안했을 가능성이다. 셔먼 대북정책조정관이 10일 브리핑에서 연락사무소 개설 여부를 묻는 질문에 “조부위원장 등 북한측과 관계 정상화와 외교대표부 문제를 포함한 전반적인 이슈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 근거다. 외교관은 용어의 선택에 신중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셔먼 조정관이 외교대표부 등을 언급한 것은 양측이 이미 상당한 수준의 관계 개선을 위한 협상에 착수했다는 의미로도 들린다.

또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내년 1월 퇴임 전에 북한을 방문하고 싶다는 뜻을 최근 밝힌 바 있어 북한은 올브라이트 장관 등 고위 관료의 방북을 제안했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인공위성 발사에 대한 국제적 지원을 전제로 장거리 미사일 개발의 포기를 제시했을 가능성도 크다. 이는 김국방위원장이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처음 제안했던 것으로 미국측은 김국방위원장이 나중에 그같은 발언이 농담이었다고 해명한 뒤에도 계속 깊은 관심을 표명해왔다.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 유예에 대한 반대급부로 대북 경제제재를 완화한 상태이므로 미국이 북한 체제의 안정을 보장하고 북한은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는 ‘거래’가 성립될 수도 있다.

북한은 또 주한미군이 북한에 위협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주한미군의 주둔을 동북아의 세력 균형 차원에서 양해할 수 있음을 제안했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조부위원장이 10일밤 국무부 만찬에서 “김정일 동지는 공화국의 자주권과 안전에 대한 미국의 담보만 확인되면 대립과 적의의 조―미관계를 평화와 친선 관계로 전환시킬 수 있는 중대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언급한 것은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또 북한에 대한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를 위해 북한 내 일본 요도호 항공기 납치범들을 추방하겠다고 제안했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빠지기 위해선 이런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므로 미국 일본의 요구를 수용하는 형식으로 이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게 관측통들의 분석이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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