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노동당 행사 참석, 사회단체 방북승인 파문

  • 입력 2000년 10월 8일 19시 20분


지난달 29일 북한이 노동당 창건 55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달라며 정당 사회단체들에게 초청서한을 보내 온 후 이의 승인 여부를 놓고 고심을 거듭해 온 정부가 ‘조건부 승인’ 결정을 내린 것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화해와 교류협력의 기조를 해치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또 남측의 시민단체가 북측의 정치적 공세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을 만큼 성숙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번 방북 승인으로 앞으로 이어질 각종 회담에서 북측이 이에 상응하는 전향적 자세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국방장관회담과 적십자회담에서 군사적 긴장완화와 이산가족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북측의 실질적 조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사전정지작업’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취지에서 정부는 방북 안내교육을 서울 수유리 통일교육원에서 하지 않고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하기로 했고 보통 2주 걸리던 방북승인도 2∼3일만에 신속하게 내주기로 했다. 방북 인사들의 편의를 위해 북측이 보낸다는 항공기의 김포공항 착륙을 위한 실무협의까지 가졌다. 말하자면 최대한의 편의를 보장키로 한 것.

그러나 ‘적화통일’을 명기한 당규약을 바꾸지 않고 있는 노동당의 ‘정치적’ 행사에 정부가 조건부라고는 하지만 방북허가를 내준 것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논란이 예상된다.

이미 보수성향의 단체들은 노동당 창건행사에 단순히 ‘참관’만 한다고 하지만 노동당 행사 참여 자체가 북한의 체제 정당성을 인정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북한의 선전선동에 놀아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식량지원과 분배의 투명성 미확보에 대한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일부 단체와 개인의 노동당행사 참여는 국민감정에도 반한다는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보수성향의 인사(서울 A대학 교수)는 “이번 방북승인은 철저히 북한의 계획에 놀아난 것”이라며 “양보가 아닌 ‘굴복’”이라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도 “정부가 방북 승인 결정과정에서 입장을 명확히 하지 못한 채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승인을 받은 단체쪽에서도 불만의 소리가 튀어나오고 있다. 한완상(韓完相) 상지대총장을 비롯한 각 단체의 방북 신청자들은 8일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을 면담하고 “각 단체의 참여 인원을 제한하지 말고 재판에 계류중이거나 수사중인 사람에 대해서도 방북을 승인해달라”고 요청했다.

정부의 이번 방북 승인으로 향후 남북관계에서 남측의 입지가 강화될 가능성은 있지만 사회 내부적으로는 ‘남남(南南) 갈등의 심화’라는 ‘내상’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태원기자>scooo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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