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테러국 제외' 가시화]경제제재 추가완화 '숨통'

  • 입력 2000년 10월 8일 19시 20분


북한과 미국이 반세기에 걸친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디뎠다.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전권(全權) 특사인 조명록(趙明祿)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미국 방문을 계기로 북―미는 본격적인 관계 개선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북―미 양국이 6일 공동성명을 통해 북한이 모든 형태의 국제 테러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천명한 것은 북한의 체면을 세워주면서 관계 개선을 하려는 사전포석인 셈.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은 조 부위원장이 미국측에 풀어놓을 ‘보따리’의 내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일단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이 빠지는 것은 이제 워싱턴 외교가에서 기정사실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북한이 이 명단에서 빠질 경우 추가적인 경제제재 완화와 함께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IBRD) 등에 가입할 수 있는 실익을 얻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국제금융기구의 가입에는 IMF의 조사 등 북한체제를 투명하게 개방해야 하는 부담이 따르기 때문에 가까운 장래에 가시화되기는 어렵다.

이에 앞서 미국은 6월 북한에 대한 ‘불량배 국가(rogue state)’라는 표현을 ‘우려국가’로 바꿔 부르기로 하고 7월엔 대북 금수(禁輸)조치를 50년 만에 해제, 경제제재를 크게 완화했다.

지난달초 김영남(金永南)북한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미국 항공사의 검색에 항의, 방미를 취소했을 때 양국이 갈등을 조기에 매듭지은 것도 관계개선의 큰 틀이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북―미 두 나라가 이처럼 관계개선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은 양국의 이해가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지기 때문.

미국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의 빠른 진전과 중국 러시아의 대북관계 복원 등 급류를 탄 동북아 정세의 변화 과정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선 대북관계를 진척시킬 필요가 있다. 북한 역시 내년 1월 미국의 새 행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그동안 물밑대화를 해온 클린턴 행정부와 거래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북―미간에는 아직도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과 핵 등 난제가 남아 있어 양국관계가 일사천리로 풀리기는 힘들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조 부위원장이 미국측에 전달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메시지가 얼마나 실질적이냐에 따라 북―미 관계의 페이스가 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미 관계의 진전은 아직은 그 속도를 누구도 정확하게 예측하기 힘들다는 중론이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미 대선의 향배, 공화당이 다수인 의회의 결정 등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 부위원장이 품에 안고 온 ‘김정일의 친서’ 내용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北, 요도號 납치범 처리 딜레마▼

북한은 6일 미국과 함께 모든 형태의 테러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국제테러에 관한 공동성명’을 발표함으로써 숙원인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에 한발짝 다가섰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서 반(反) 테러 의지를 입증해 보여야 한다는 것. 정부내 미국통들은 “북한이 우선 요도호 납치범문제의 해결에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70년 3월 일본항공 ‘요도호’를 공중 납치한 적군파들을 ‘정치적 망명자’라며 30년이 넘도록 보호하고 있다. 당사국인 일본은 북한과의 수교협상에서 “범법자인 이들을 인도하라”고 요구했으나 북측은 이를 거절해 왔다. 그 후 일본은 미국측에 “요도호 문제해결을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의 전제조건으로 삼아달라”고 요청했고 미측은 이를 받아들였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은 수차례의 북―미 회담을 통해 요도호 납치범을 보호하고 있는 한 미국이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해주기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지만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길 묘안을 찾지 못해 고민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북측이 고려할 수 있는 방안은 대략 세 가지. 첫째는 사면을 조건으로 일본으로 추방하는 것. 북측으로서는 최선이지만 일본이 국내여론 등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둘째는 제3국으로 추방하는 안. 북한이 ‘결코 추방의 형식으로 이들을 내쫓을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바꿔야 가능하다. 셋째는 납치범들이 스스로 귀국하는 방안. 사건 당시 9명의 적군파 중 3명은 이미 숨지고, 2명은 우여곡절 끝에 일본으로 돌아온 상태. 남은 4명 역시 일본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북한이 이 중 어떤 안을 선택해서 반(反) 테러 의지를 내외에 과시할지 모르나 이 문제의 해결이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는 물론 향후 북―미관계 개선의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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