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자금 정치권 유입]자금추적 어떻게 이뤄졌나

  • 입력 2000년 10월 5일 18시 35분


검찰의 자금추적으로 ‘안기부 정치자금’의 실체가 처음 밝혀져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검찰이 경부고속철 차량선정 로비자금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안기부 자금을 포착한 것은 ‘우연’과 ‘집념’의 결과로 알려지고 있다.

프랑스 알스톰사 로비스트 최만석씨의 자금을 쫓다가 그것과는 전혀 관계없는 정체불명의 자금을 우연히 발견하고 그 물줄기를 치밀하게 따라가 대규모 ‘저수지’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사실 검은 돈을 주고받을 때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돈세탁’이다. 돈세탁은 불법적이고 비정상적인 자금을 금융기관 등을 통해 정상적인 자금으로 만드는 과정. 자금추적은 바로 돈세탁 과정을 하나하나 역추적해 그 뒤에 숨어있는 범죄행위를 밝혀내는 작업이다.

안기부 자금도 치밀하게 세탁됐다. 안기부는 경남종금 등 여러 개의 금융기관을 동원, 수백억원대 자금을 현금으로 바꿨다.

안기부는 이렇게 돈의 ‘꼬리’를 자른 뒤 다시 이 돈을 수억원 단위로 잘게 쪼개 여러 계좌로 분산시키고 이어 총선 후보자들에게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같이 돈세탁이 이루어져도 수표로 돈의 흐름이 이루어졌을 경우 그 과정을 추적해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금융기관이 수표의 입출금 기록은 사실상 영구 보관하게 되어있기 때문.

자금추적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현금’ 부분이다. 수표는 출구와 입구가 명확하지만 현금은 흔적이 없기 때문. 따라서 자금흐름에서 수표가 갑자기 현금으로 바뀌면 흐름이 끊기게 된다.

그러나 검사들은 현금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꼬리가 있다고 말한다. 예컨대 한 은행 지점에서 하루에 처리되는 현금의 총액은 4억∼5억원이고 많아야 10억원 이내다. 따라서 지점에서 한꺼번에 1억원 이상을 현금처리하려면 반드시 다른 지점 또는 본점에서 현금을 꾸어 오거나 입출금 전표상으로 현금처리하고 실제로는 이미 발행되어 있는 다른 수표를 지급한다는 것. 따라서 은행이나 증권사 지점 등에서 평소와 다른 현금 입출금이 있을 경우 그 흐름을 면밀히 추적하면 비정상적인 돈의 출구와 입구를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90년대 이후 대형 사건을 수사해온 특수부 검사들은 “자금추적을 하다 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자금이 나타날 때가 여러 차례 있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그러나 그 돈을 끝까지 추적하지는 못했다.

돈세탁이 철저하게 이뤄진데다 그 돈이 안기부가 정치권에 뿌린 정치자금이라는 것을 직감한 검찰수뇌부가 더 이상의 추적을 막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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