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남쪽 아내와 방북한 이선행씨 수기

  • 입력 2000년 8월 18일 18시 38분


《이번 이산가족 방북단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이선행(81) 이송자씨(82) 부부 가운데 남편 이선행씨가 북의 부인 홍경옥씨(76) 등 가족을 만난 소감을 쓴 자필 방북기를 본보에 보내왔다. 그 가운데 주요 부분을 소개한다. 》

6월 15일 이전에는 혈육을 찾을 생각도 못했다. 전란중에 연약한 처자를 버리고 도망하였기에 살아남으리라고 기대할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도 ‘살아 만나게 해주세요’라기보다 ‘그들의 영혼을 부탁합니다’라고 할 정도였다.

방북단에 들었다는 통지를 받고 들뜬 마음으로 선물을 준비했다. 내가 만일 수절한다고 홀로 지냈다면 선물을 준비할 여유가 있었을까. 오로지 지혜로운 아내(이송자)의 근검절약에 감사할 뿐이다. 우리 집에는 대부분이 30년 이상된 물건들이고 내 이발도 아내가 해줬다.

드디어 방북길에 올랐다. 고려항공기로 순안에 도착했다. 서울 거리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평양냉면으로 점심을 들고 휴식한 다음 설레는 집체상봉. 아들 진일 진성의 50년 지난 모습이야 말할 것도 없고 아내 홍경옥의 전혀 딴 사람으로 변한 모습이 너무 애처로웠다.

나 때문에 이 연약한 것이 네 남매를 키웠으니…. 헤어질 당시 복중에 있던 딸도 이제 50세인데 이름을 몰라서 신청서에 넣지 못했기에 오지 못했다. 진일이가 나만 빠진 가족사진을 내놓았다. 어머니(67년 별세)의 모습, 누님(이숙행·89년 별세)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었다. 내 아들이 분명했다. 아내(홍경옥)와의 대화에서 50년 전 이웃들의 이름(음록이네, 시경형님네)과 내가 공부시켰던 귀여운 막내여동생 윤숙 등에 대해 들었다. 내 아내가 분명해졌다. 나는 아내임을 확인한 뒤 첫마디로 “당신 영웅이오”라고 말했다. 아내는 울지 않았다. 다만 “무식한 나는 어머니 역할을 다했소. 모두 효자들이오”라고 답했다.

16일 개인상봉의 시간. 가족상황부터 풀어나갔다. 3남1녀에 손자 손녀가 14명, 자부가 3명, 사위가 1명, 증손녀가 2명. 이들을 키워낸 아내(홍경옥)가 정말 크게 보였다. 오후에 유람선으로 대동강을 거슬러올라가 단군릉을 둘러보는 관람은 몹시 피곤했다. 버스에서 잠에 빠졌다.

17일 두번째 개인상봉의 시간. 자녀의 가족상황 확인. 진일 1남2녀, 진걸(99년 별세) 3남2녀, 진성 1남1녀, 덕행 누님 3남3녀, 첫째여동생(97년 별세) 2남1녀, 둘째여동생(89년 별세) 1남3녀, 막내여동생 5남1녀, 헤어질 당시 복중에 있던 딸 옥희 3남1녀. 다 죽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무성하다니.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아내가 나를 위로하는 말. “애들 모두가 당신을 닮아서 효자들이오.” 전시에 어린것들을 정성으로 돌봐주었다는 누이동생이 살아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점심시간에 남북 보도진이 몰려왔다. 이선행 이송자 두 가족이 합석하라고 난리다. 북측에서 이상하게 봤던 것 같다. 부부가 어떻게 같이 왔는지, 어떻게 두 가족인지를. (합석한 자리에서) 이송자의 아들 박의식에게 말했다. “늙은 어미에게 개인 머슴이 있으니 안심하라.” 내 아들들에게도 말했다. “늙은 아비에게 개인 식모가 있으니 안심하라.”

점심 후 헤어질 시간. 처음으로 아내가 눈물을 보였다. 죄송했다.

마지막날 밤에 이 글을 쓴다. 가족들을 내일 아침 출발시 한번 더 보게 될텐데 격정을 참을 수 있을는지. 이 민족을 사랑하셔서 통일의 초석을 쌓게 하신 하나님. 제 세대의 잘못을 절대 반복하지 않게 2세, 3세에게는 민족의 장래를 먼저 생각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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