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년 첫 상봉때와 비교]당시 北가족 울음도 참아

  • 입력 2000년 8월 15일 19시 31분


이번 이산가족 만남은 85년 9월20∼23일 첫 상봉과는 내용과 형식 등 모든 면에서 단순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차이가 크다.

이번엔 남북 각 100명의 이산가족이 상대편을 방문해 가족을 만나는 데 비해 85년에는 서울 평양 각 35, 30명이 가족과 만났을 뿐이다. 상봉 횟수와 방법 등도 당일까지 합의되지 않았었다.

무엇보다 85년과의 가장 큰 차이는 만남의 내용. 긴장이 완화된 남북관계를 그대로 반영하듯 남북 가족 간에 이산의 정을 나누는 방식은 과거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훨씬 자유로워졌다.

85년 대부분의 북측 방문단원들은 서울의 가족을 만나서도 서먹한 표정으로 일관하다 남쪽 가족이 통곡하면 그제서야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당시 상봉장소에는 북측 인솔단원이 동행, 울음을 그치지 않은 방문단원에게 ‘진정하고 차분하라’는 주문을 할 정도였다. 남에 사는 두 형을 만난 북한의 홍연구씨(당시 58세)는 부둥켜안고 우는 형들에게 빙그레 웃음만 던져 화제가 됐었다.

당시 북측 방문단 중에는 체제수호적 발언에 열중하거나 서로 다른 정서를 노골적으로 표시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삼촌 권혁성씨(당시 61세)를 만난 순억씨(당시 52세)는 대화중 기자가 심정을 묻자 “나는 원산수산대 교수이고 노력영웅”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남측 방문단의 고 지학순 주교를 만난 평양의 누이동생은 “우리는 살아서 천당 가는데 오빠는 죽어서 천당 가겠다니 돌았구먼요. 우리는 모두 잘 먹고 근심 없이 살아 이곳이 천당인데 어디서 천당을 찾겠다는 거요”라고 말해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이번 만남에서 남북의 가족들은 상호 체제를 거스르는 발언은 삼가고 가족의 안부를 물으며 통곡하는 모습이 많아 일단 ‘체제의 벽’을 넘어 분단의 한을 삭이는 모습이 역력했다. 15일 김포공항에 내린 북측 방문단은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며 “하루 빨리 통일이 돼야 한다”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밖에 안 난다”고 말했다.

85년 당시 방북단의 일원으로 평양에 갔던 이재운 변호사(65)는 “당시에는 북한 당국이 여러 제약을 두었던 것은 물론 남한 당국도 ‘혹 간첩이 내려올지 모르니 주소교환도 하지 말라’고 해 그 뒤 편지교환할 여지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허문명기자>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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