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동서독]매년 수백만명 상호 방문

  • 입력 2000년 7월 28일 18시 36분


1970년 두 차례 열린 동서독 정상회담은 정치 분야에서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민간 교류의 폭을 대폭 넓혔다. 가장 두드러진 것이 이산가족 방문 분야.

1945년 분단 이후 동서독은 52년 베를린 봉쇄와 53년 동베를린 시민봉기 등 정치적 사건으로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이산가족 상호방문 만큼은 한 해도 빠짐없이 이뤄졌다. 사실상 내전을 거치며 상호 적대감을 키운 남북한과는 다른 여건 때문이었다.

50년대 양독간 이산가족 방문은 꾸준히 증가해 54년 500만명을 넘어섰지만 동독이 61년 베를린장벽을 설치한 뒤 교류는 단절되고 양독 관계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70년 빌리 브란트 서독총리가 주도한 동서독 정상회담은 이산가족 방문뿐만 아니라 각 분야 민간 교류가 활발해지는 전기로 작용했다. 후속 조치로 71년 동서베를린간 직통전화가 개설됐으며 방문 조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베를린 통과 협정과 동서독 교통 조약이 체결되자 이산가족 상호 방문은 붐을 이뤘다.

73년부터 서독의 동독 방문자 수는 다시 늘어나 500만명을 웃돌았다. 동독은 이 과정에서 동독을 방문하는 서독주민에게 1인당 10마르크의 의무 환전과 비자 수수료 등을 요구했다.

동독은 50년대에는 연금 생활자에 한해 서독 방문을 허용했으나 정상회담 이후인 70년대 들어서는 서독에 친척을 둔 일반 주민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서독은 인적 교류를 지원하기 위해 함부르크∼베를린, 하노버∼베를린간 고속도로 건설비와 도로 사용료, 보수비 일체를 부담했다. 서독을 방문하는 동독주민에게는 100마르크의 지원금과 서독내 여행 경비, 의료보험 혜택 등을 부여했다.

이 때문에 서독을 방문한 동독주민 중 귀환을 거부하는 사례도 생겨났고 10여만명이 서독에 정착했다. 서독은 이를 무마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동독에 지불해야 했다.

서독 정부가 이와 함께 가장 신경을 썼던 분야는 동독 주민의 이주 문제. 독일국민을 37년 당시 독일 영토(현재 폴란드와 체코 일부 포함)에 살았던 독일인으로 규정한 기본법(헌법) 116조에 의해 서독 정부는 동독 주민에게 서독 주민과 똑같은 지위를 부여했다.

이 법 조항에 따라 수많은 동독 주민이 서독을 찾았다. 이는 동독에 대한 문호 개방 압력으로 작용했다.

분단이후 88년까지 동독에서 서독으로 이주하거나 탈출한 주민은 440여만명. 베를린장벽이 설치되면서 이주, 탈주자 수는 크게 줄었지만 동독은 60만명의 연금 생활자에 대해서는 이주를 허용했다. 서독도 이념적인 이유나 개인적인 동기로 동독 이주를 희망하면 이를 허용, 약 40만명이 서독을 떠났다.

서독은 50년 ‘긴급수용법’을 제정, 동독의 이주자와 탈주자에게 주택과 직장을 마련해 주며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동독 이주, 탈주자는 서독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마련한 수용소에서 2∼3개월간 적응 훈련을 받은 뒤 지방단체의 경제 상황과 인구 비율에 따라 정착지가 결정됐다. 주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들에게 임대주택과 직장을 주었다.

서독은 인도적 차원에서 동독 체제에 저항하거나 탈출하려다 붙잡힌 정치범 석방에도 노력했다. 서독은 64년 이후 통일에 이르기까지 3만3000명의 정치범 석방을 위해 340만마르크를 동독에 지불했다. 서독은 또 서독으로 추방된 정치범 가족의 서독 이주를 주선, 25만명의 이산가족이 재회의 기쁨을 맛보았다.

분단 이후 서독 정권은 기민당(CDU)과 사민당(SPD)이 번갈아 잡았지만 동서독 주민 상호방문 정책은 일관되게 추진했다.

이런 일관된 정책이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 ‘접근을 통한 변화’를 표방했던 브란트 총리(69∼74년 재임)의 선구자적인 동방정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서독은 동서독간 인적 교류의 확대와 동독의 인권보장문제를 동독에 대한 경제 원조와 연계하는 정책을 취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인적 교류와 경제적 지원에 그치지 않고 모든 분야로 교류가 확대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산가족의 방문과 인적 교류가 독일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통일을 대비하는 지름길이라는 서독 정부의 확신, 그리고 이를 믿고 따랐던 동서독 주민의 노력으로 동서독은 45년동안의 분단을 극복하고 1990년 마침내 통일을 이룩했다.

<백경학기자> stern10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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