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친북론' 배경-영향]보혁갈등 끝내 폭발

  • 입력 2000년 7월 13일 19시 01분


남북정상회담 이후 대북정책 기조를 놓고 점진적으로 고조돼 왔던 여야 갈등이 북한측의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 비난방송을 계기로 13일 국회 일정이 파행을 빚는 등 비등점(沸騰點)을 향해 치닫고 있다. 특히 갈등 촉발의 방아쇠가 북한의 관영방송이었다는 점에서 기존의 ‘여―야 갈등’이 ‘여―야―북한의 3각 갈등구조’로 전이되는 형국이다. 이는 또한 그동안 내연(內燃)해 오던 보―혁(保―革) 갈등이 ‘북한 변수’를 통해 현실정치에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도 불 수 있어 파장이 주목된다. 이미 사회 일각에서는 “정상회담으로 남북간 긴장완화 조짐이 보이는 때에 오히려 남쪽에서는 ‘남―남(南―南)갈등’이 야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표면상 이번 사태는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이총재 비난(11일)→북한뿐만 아니라 이총재도 문제가 있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양비론 발언(12일)→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한나라당 권오을(權五乙)의원의 청와대 친북세력 발언(13일)→민주당의 반발→국회 파행’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으로 구성돼 있다.

사태 진전과정을 보면 단순한 말의 실수나 감정의 과잉, 해프닝쯤으로 치부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보다 깊이 들여다보면 그 이면에는 어떤 ‘필연성’이 내재돼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실제로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이미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대북정책의 틀을 어떻게 짜야할지를 둘러싸고 서로 좁힐 수 없는 시각차를 분명하게 드러냈었다.

이는 앞으로 정국운영의 주도권을 놓고 양측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부분 못지 않게 두 정당을 떠받치고 있는 지지계층과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 나아가 두 정당의 ‘철학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민주당의 경우 그동안 남북정상회담과 대북정책에 대한 한나라당의 문제 제기에 대해 사실상 2002년 대권을 염두에 둔, 질투 섞인 ‘딴죽걸기’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같은 맥락에서 야당이 민족적 대사(大事)를 정략적으로만 접근한다고 불만을 피력해 왔다.

반면 한나라당은 현 여권의 대북정책에 대해 ‘자칫 국민의 세금인 판돈만 모두 날릴 수 있는 위험한 도박’이라는 시각에서 끊임없이 문제점을 지적해 왔다.

따라서 13일 국회파행 사태는 남북정상회담 때부터 줄곧 내재돼 있던 두 정당의 갈등과 그 갈등의 뒤에 숨어있는 한국의 이념적, 정치적, 사회적 지형도(地形圖)가 ‘북한 방송’을 매개로 폭발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앞으로 이산가족 상봉,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답방 등 대북사업을 추진해 가는 과정에서 이같은 갈등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으로서는 야당은 물론 그 뒤를 받치고 있는, 그래서 흔히 ‘보수’로 범주화되고 있는 계층과 세력의 목소리를 보다 성의있게 듣고 설득해 나가는 것이 대북사업 보다 더 어려운 일임을 새삼 실감했을 것으로 보인다.

<공종식기자>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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