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2차 예비회담을 거쳐 본회담을 진행할 것이라던 당초 예상에 비하면 발빠른 진전이다. 아오키 미키오(靑木幹雄)관방장관의 말대로 “비공식 협의를 계속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로 보인다.
북한을 협상테이블에 끌어낸 것은 무엇보다 쌀이었다. 북한은 지난 해 12월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전총리가 이끄는 초당파 의원단이 찾아갔을 때부터 식량을 요구했다. 그러나 일본인납치문제, 대포동 미사일 발사, 괴선박 영해침범 등으로 북한에 대한 일본 국민의 감정이 나빠진 시점에서 일본정부가 이 요구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결국 예비회담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일본정부는 마침내 쌀을 건네주고 협상의 끈을 이어가면서 최대현안인 일본인 납치문제를 풀어가기로 전환했다.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일본총리로서는 마치 도박을 하는 셈이다.
일본은 1995년 쌀 50만t, 1996년 600만달러어치(약66억6000만원)의 쌀과 의약품, 1997년 쌀 6만7000t을 북한에 지원했다. 그러나 북한과의 관계는 쉽게 개선되지 않았다.
자민당과 자유당 내에서는 북한에 대한 쌀 지원에 반대도 적지 않다. 납치피해자가족연락회 등은 “일본정부가 김정일테러정권에 굴복했다”며 외무성 앞에서 농성을 할 정도.
일본 정부는 이를 의식했는지 7일 관방장관 발표문을 통해 “일본이 성의를 보인 만큼 북한이 성의를 갖고 대응할 것을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 회담이 결렬될 것에 대비해 ‘쌀 지원은 어디까지나 인도적 차원’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북-일교섭이 진전될지는 1992년 11월 협상이 깨지기 전처럼 일본이 얼마나 잘 참느냐에 달려있다.
<도쿄〓심규선특파원>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