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문제점 파장]"이게 개혁인가" 民心 심상찮다

  • 입력 2000년 1월 16일 20시 03분


“‘금밥통 챙기기’에 여야가 따로 없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16일 여야의 선거법 협상 타결 결과를 이렇게 표현했다. 당초 선거법 협상의 취지인 정치개혁을 위해 ‘일보전진’하기는커녕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에만 급급하는 바람에 ‘이보 후퇴’했다는 것. 금배지들의 ‘제밥 챙기기’가 공무원들의 ‘철밥통 챙기기’보다 훨씬 더 노골적이고 추악했다는 얘기다.

14일 여야가 지역구수를 현재의 253개에서 254개로 1개 늘리기로 한데 대해 언론과 시민단체 등은 “정치개혁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비난했다. 그런데 여야는 15일 협상에서 당초 통합키로 했던 원주 경주 군산 순천 등 4개 도농통합 지역구의 분구를 인정, 4개의 지역구를 더 늘렸다.

이에 대해 여야 원내총무들은 “인구가 25만명 이상인 도농통합지역을 구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당초 인구 상하한선을 ‘7만5000∼30만명’으로 규정한 데 대해 별다른 원칙없이 예외를 인정한 것. 경기 하남-광주, 강원 속초-고성-인제-양양은 별도 행정구역인데도 분구를 인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하남-광주는 지난해 9월말 기준으로 26만3597명인데도 분구를 인정하지 않아 선거법 합의에 대해 위헌논란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강원 원주와 경북 경주는 한나라당, 전북 군산과 전남 순천은 국민회의의 ‘텃밭’인 만큼 각각 2개의 지역구를 나눠 먹는 셈. 이에 대해 여야 관계자는 “해당의원들이 탈당하겠다고 위협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원내총무는 16일 “지역구를 줄이지 않는다는 데는 처음부터 여야 총무들 사이에 공감대가 있었다”고 말해 여야가 애초부터 지역구 축소 의지가 없었음을 밝혔다.

한나라당이 국회의장 공관 앞에서 농성을 벌이며 ‘1인2표제 강력 반대’를 외친 것도 도농통합 지역을 살리기 위한 쇼가 아니었느냐는 시각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선거법 무시]

여야는 ‘가장 최근의 인구통계를 선거구 조정에 적용해야 한다’는 선거법의 명문 규정을 어겨가며 인구통계 기준을 지난해 9월말로 택했다. 인구 기준을 9월말로 택한 이유는 일부 지역의 인구가 9월말에서 10월말, 11월말로 가면서 감소 추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인구가 더 많은 9월말을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한나라당은 부산 남갑,을 2개 선거구의 통합을 막고 흡수 통합 위기에 놓였던 경남 창녕을 살렸다. 국민회의도 전남 곡성-구례를 유지시켰다.

이 과정에서 여야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선거법상 민간인 5명과 국회의원 2명 등으로 구성하게 돼 있는 선거구 획정위 구성을 생략했다. 선거구 획정위 대신 여야의원들로 구성된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선거구 획정을 담당토록 해 ‘그들만의 잔치’에 대한 외부견제를 아예 차단했다.

[국민부담 증가]

여야는 15일 총선과 대선이 있는 해에 지급되는 선거 국고보조금을 현행 유권자 1인당 800원에서 1200원으로 50% 인상키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여야 3당이 내년에 지급받는 국고보조금 총액은 504억원에서 630억원으로 126억원 늘어났다. 선거가 있는 해는 경상 보조금 252억원에 선거 보조금 252억원이 추가 지급되는 데다 선거보조금이 50% 늘었기 때문이다.

당초 여야 사이에 논의됐던 ‘대기업 법인세 1% 징수’ 방안은 한나라당측이 “선거법안과 거래했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고 반대했다는 후문. 결국 대기업의 부담을 국민의 세금 몫으로 돌린 셈. 여기다 1인2표제 도입에 따라 선거관리 비용이 두배 가까이 증가하는 것까지 합산할 경우 선거법 개정에 따른 국민 부담 증가액은 150억원 가량 될 것이라는 게 선관위측 추산이다.

[각종 편법 탈법]

이번에 도입되는 이중등록, 석패율 제도는 개념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지역구가 불리한 의원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것이라는 비난이 무성하다. 한나라당도 당초 “무슨 선거법이 대입 수능시험보다 어려우냐”고 반대했으나 일부 도농통합지역구를 살리는 과정에서 이중등록과 석패율제도를 양보했다는 후문.

또한 15일 밤 회기를 18일까지 연장하는 과정에서 밤 12시가 지난 뒤인 16일 0시50초에 회기연장의 건을 가결한 것도 명백한 국회법 위반으로 18일까지 회기연장을 한 것이 원인무효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에 여야가 마련한 선거법이 18일 통과될 경우 그 법의 효력에 대한 무효 논란까지 예고하는 대목이다. 국회가 매사에 법을 무시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단면이 아닐 수 없다.

<박제균기자>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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