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대선자금 파문]정태수씨-검찰 엇갈린 주장

  • 입력 1999년 2월 5일 19시 23분


'청문회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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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대선자금 진술’을 둘러싸고 정태수(鄭泰守)전한보그룹총회장과 검찰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다.

정전총회장은 4일 국회 경제청문회에서 “검찰이 지난해 한보사건 수사 당시 김영삼(金泳三·YS)대통령에게 대선자금을 주었는지에 대해 묻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은 “물었지만 정전총회장이 대답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진상은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양쪽 모두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검찰은 ‘비공식적’으로 물어봤지만 공식적으로는 물어보지 않았다. 정전총회장은 비공식적으로는 시인했지만 ‘공식적’으로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보그룹 특혜대출 비리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두단계로 진행됐다. 당시의 중앙수사부장은 공교롭고 기이하게도 이번 검찰파동과 함께 옷을 벗은 최병국(崔炳國) 심재륜(沈在淪)검사장 두사람. 97년1월 23일 한보철강 부도 직후부터 다음달 20일까지 1차 수사가 진행됐고 3월24일부터 6월5일까지 2차 수사가 이뤄졌다.

1차 수사와 2차 수사는 그 성격이 다르다. 1차 수사팀은 당시 김영삼대통령의 ‘친정체제’에 가까웠다. 당시 수사사령탑인 최병국대검 중수부장(전전주지검장)은 검찰내 대표적인 PK(부산 경남)인맥이었다.

1차 수사에서 YS의 대선자금 문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수뢰혐의가 드러난 홍인길(洪仁吉)의원이 ‘깃털론’을 주장해 배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지만 검찰은 ‘몸통은 없다’며 수사를 맺었다.

그러나 당시 수사관계자는 정전총회장에게 비밀리에 대선자금에 대해 물었다. 정전총회장은 당시 “92년 대선때 김영삼후보에게 6백억원을 줬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질문과 대답은 어디까지나 ‘비공식적인’ 것이었다. 조서에 이 진술이 기록되지도 않았고 정전총회장도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몰래 엿본 ‘판도라 상자’가 바로 덮어졌다.

본보는 이같은 내막을 취재해 97년 5월8일자 1면에 ‘김대통령 한보로부터 대선자금 6백억원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1차 수사에 대해 축소왜곡 시비가 일자 수사 사령탑인 대검 중수부장이 심재륜검사장(전대구고검장)으로 전격 교체됐고 2차 수사가 시작됐다.

검찰은 정전총회장의 전재산을 압류하고 그때까지 불구속 상태이던 정전총회장의 아들 정보근(鄭譜根)회장을 구속했다. 또 정치인 33명을 소환해 8명을 기소했다.

이때 검찰은 김전대통령의 대선자금을 찾아내지 못했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현직 검사는 “YS의 대선자금 문제는 한보사건의 본질이 아니었지만 언론과 정치권에서 이 문제를 집요하게 거론해 정전총회장을 여러 차례 추궁했다”고 말했다. 정전총회장이 ‘자물통’을 열지 않았다는 것.

심전고검장은 “97년4월7일 한보 청문회가 끝난 직후 정전총회장을 소환해 YS의 대선자금 문제를 추궁했는데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며 “당시 정전총회장은 YS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눈치였다”고 말했다.

결국 검찰은 그해 6월5일 YS의 차남 김현철(金賢哲)씨에 대한 수사발표에서 현철씨의 대선자금 잔여금을 공개하면서 대선자금의 ‘꼬리’만 보여줬다.

정전총회장이 제기한 ‘한보수사 음모론’도 논란거리다. 정전총회장은 경제청문회에서 “야당총재와 신한국당 최형우(崔炯佑)의원에게 돈을 준 일이 있다고 시인하면 아들 정보근회장을 불구속하겠다고 검찰이 제의한 일이 있느냐”는 국민회의 천정배(千正培)의원의 질문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며 시인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하고 있다. 1차 수사 때 수사실무를 맡았던 박상길(朴相吉)서울지검 특수1부장은 “야당총재와 최의원을 찍어 물어봤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정보근회장 구속에 대해서도 “부자(父子)를 함께 구속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해 논란이 있어 정회장에 대한 구속을 미루고 있었는데 심재륜중수부장이 새로 부임해 정회장을 전격 구속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부장검사는 “한보사건 1차 수사 당시 최병국중수부장이 동향(同鄕)출신인 최의원을 봐주고 있다는 오해를 풀기 위해 정전총회장을 상대로 최의원에게 돈을 준 일이 있는지 물어봤을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어떤 경우든 정전총회장의 진술은 신뢰가치가 떨어진다는데 의견을 같이한다. 그가 정치적 상황과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수시로 말을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이 재수사를 꺼리는 또 하나의 이유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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