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선]금품-향응-흑색선전 난무 후유증 클듯

  • 입력 1998년 7월 21일 19시 22분


선거는 끝났다. 그러나 후보와 유권자가 모두 패자가 되고 만 선거였다.

21일 실시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는 ‘사생결단’이라는 말을 연상케하는 전쟁터였다. 유권자들은 난무하는 금품과 향응제공 흑색선전에 더해 인해전술식 선거운동으로 인해 가정생활까지 침해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11만5천여명의 유권자가 있는 경기 광명을 선거구 주민들에게 이번 선거운동기간은 ‘공해’를 지나쳐 ‘인고의 시간’이었다. 주민들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계속되는 전화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주부 최모씨(37·경기 광명시 철산3동)는 “하루 5건이 넘는 전화공세에 시달려야 했다”며 “밤 11시가 넘도록 양측 선거운동원들의 전화가 끊이질 않아 ‘이러면 절대로 안찍겠다’고 신경질을 낸 후에야 전화가 뜸해졌다”고 말했다.

연설의 소음공해도 문제. 18만명의 유권자가 있는 경기 수원 팔달 선거구의 아파트단지는 각 후보의 경쟁적 ‘목청 높이기’유세로 선거 전날인 20일 밤늦게까지 시장통을 방불케했다.

이 지역 삼성아파트에서는 밤 11시가 가깝도록 모후보가 “정치인들은 물러가고, 경제통을 국회로 보내자”며 연설을 시작하자 “일방적인 지지호소로 주민들의 편안한 밤을 뺏어가는 사람이 국회의원의 자격이 있느냐”고 분노한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해 경찰이 출동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향응제공과 금품살포의 구태도 여전했다. 강원 강릉을 선거구 유권자인 김모씨(40·주부·강릉시 포남동)는 “선거 일주일 전부터 점심 또는 저녁에 각 후보로부터 돌아가며 향응을 제공받았다”고 말했다.

이렇듯 타락 불법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혐오는 곧바로 선거기피현상으로 이어졌다. 서울 서초구 반포2동 조중휘(趙重輝·30·자영업)씨는 “여야 선거운동원들이 선거운동기간 전부터 무차별 전화공세를 펴 정치권에 대한 나름의 경고표시로 투표에 불참키로 했다”고 말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서진영(徐鎭英)교수는 “선거의 과열혼탁 양상이 ‘정국의 주도권을 위해서’라는 말로 면죄부를 받는 현실이 난센스”라며 “앞으로 정치개혁을 어떻게 해야 이렇게 난장판인 선거판을 현실적으로 규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사회부〉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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