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P연대」에 이어 성사된 「이―조 연대」에서 눈에 띄는 또하나의 기묘한 인생유전(人生流轉) 사례가 김윤환(金潤煥)한나라당선대위원장과 이기택(李基澤)전민주당총재의 경우다.
이들은 신한국당과 민주당의 합당과정에서 함께 막후주역으로 활약했다. 그래서 한나라당안팎에선 이들에게 「몸통」 「왕회장」이라는 소리까지 따라붙는다.
그러나 두 사람이 걸어온 행로는 너무나 달랐다. 김위원장은 유신말기 유정회의원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그리고 전두환(全斗煥)정권 때 대통령비서실장, 노태우(盧泰愚)정권 때 여당의 사무총장, 김영삼(金泳三)정권 때 여당대표를 지내는 등 줄곧 「양지(陽地)」에서만 살아왔다.
반면 이전총재는 고 유진오(兪鎭午)전신민당수에 의해 발탁돼 67년 7대 국회에 진출한 이후 줄곧 야당인의 길을 걸어왔다. 지난 90년 김위원장의 주도로 이루어진 3당합당 때 이전총재는 합류를 거부하고 이탈, 이른바 「꼬마민주당」을 이끌었다.
그 후 이전총재는 DJ와 손을 잡고, 김위원장의 「YS대통령 만들기」에 맞서 싸웠다. 그 당시 「정통야당의 유일 적자(嫡子)」는 이전총재의 자존심이자 정체성이었다.
개인적으로도 김위원장이 「YS대통령 만들기」 「이회창대통령 만들기」 등 이른바 킹메이커로 정치생명을 이어온 반면 이전총재는 끊임없이 「대통령의 꿈」을 키워왔다.
하지만 이전총재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을 거듭했다. 급기야 마지막 승부수로 띄웠던 포항보선에서마저 패배하자 조순(趙淳)서울시장을 총재및 후보로 「모셔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몰렸다. 그리고 신한국당과의 합당에 동의, 「정통야당의 유일 적자」의 기치를 내리게 된 것이다.
〈김창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