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환-이기택씨,「李-趙연대」2人의 숨은 「몸통」

  • 입력 1997년 11월 21일 19시 48분


「DJP연대」에 이어 성사된 「이―조 연대」에서 눈에 띄는 또하나의 기묘한 인생유전(人生流轉) 사례가 김윤환(金潤煥)한나라당선대위원장과 이기택(李基澤)전민주당총재의 경우다. 이들은 신한국당과 민주당의 합당과정에서 함께 막후주역으로 활약했다. 그래서 한나라당안팎에선 이들에게 「몸통」 「왕회장」이라는 소리까지 따라붙는다. 그러나 두 사람이 걸어온 행로는 너무나 달랐다. 김위원장은 유신말기 유정회의원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그리고 전두환(全斗煥)정권 때 대통령비서실장, 노태우(盧泰愚)정권 때 여당의 사무총장, 김영삼(金泳三)정권 때 여당대표를 지내는 등 줄곧 「양지(陽地)」에서만 살아왔다. 반면 이전총재는 고 유진오(兪鎭午)전신민당수에 의해 발탁돼 67년 7대 국회에 진출한 이후 줄곧 야당인의 길을 걸어왔다. 지난 90년 김위원장의 주도로 이루어진 3당합당 때 이전총재는 합류를 거부하고 이탈, 이른바 「꼬마민주당」을 이끌었다. 그 후 이전총재는 DJ와 손을 잡고, 김위원장의 「YS대통령 만들기」에 맞서 싸웠다. 그 당시 「정통야당의 유일 적자(嫡子)」는 이전총재의 자존심이자 정체성이었다. 개인적으로도 김위원장이 「YS대통령 만들기」 「이회창대통령 만들기」 등 이른바 킹메이커로 정치생명을 이어온 반면 이전총재는 끊임없이 「대통령의 꿈」을 키워왔다. 하지만 이전총재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을 거듭했다. 급기야 마지막 승부수로 띄웠던 포항보선에서마저 패배하자 조순(趙淳)서울시장을 총재및 후보로 「모셔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몰렸다. 그리고 신한국당과의 합당에 동의, 「정통야당의 유일 적자」의 기치를 내리게 된 것이다. 〈김창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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