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신한국 내분…비주류 『적반하장…후보교체하자』

  • 입력 1997년 10월 23일 19시 40분


신한국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김영삼(金泳三·YS)대통령 탈당요구로 촉발한 당내 갈등은 이총재 지지파와 반(反)이세력이 모두 퇴로를 차단한 채 맞대결하는 형국으로 치닫고 있다. 이총재진영은 원내외위원장들의 지지결의를 통해 세확산을 꾀하는 한편 차제에 반이세력을 당에서 몰아내겠다는 생각이고 이총재 반대파들은 당에 남아 계속 이총재를 흔들어 결국 후보직을 내놓게 만든다는 전략이다. ▼이총재 진영 김윤환(金潤煥)고문을 중심으로 한 범민정계 의원 40여명은 23일 저녁 서울시내 한호텔에서 긴급 회동, 「이총재 사수(死守)」를 결의했다. 이총재 본인도 이날 낮 서울 63빌딩의 한 음식점에서 홍준표(洪準杓) 김문수(金文洙) 이우재(李佑宰)의원 등 개혁성향의 의원 10여명과 오찬회동을 갖고 지지와 협조를 당부했다. 또 백남치(白南治) 김명섭(金明燮) 박주천(朴柱千)의원 등 서울출신 원내외위원장 12명과 이국헌(李國憲) 이윤성(李允盛) 홍문종(洪文鐘)의원 등 초선의원 15명이 각각 별도 모임을 갖고 이총재지지를 다짐했다. 박헌기(朴憲基)경북도지부장을 비롯한 대구 경북지역 당직자 및 당원 6백여명도 대구시지부에서 「이회창총재 정치혁신 선언 지지대회」를 전격개최, 이총재 지지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총재 지지세력들의 현상황에 대한 인식은 김대통령의 애매한 태도가 당내 일부의 「이회창흔들기」에 일차적 원인을 제공했으므로 이총재의 「YS탈당」 요구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검찰의 국민회의 김대중(金大中·DJ)총재 비자금수사 유보방침이 발표 하루 전에 김총재에게 전달된 것은 「YS―DJ」묵계아래 벌어지는 「이회창죽이기」에 다름아니며 이런 사태를 방치할 경우 앉아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반이세력 민주계중심의 반이세력은 주로 민정계를 업은 이총재가 「청와대 음모설」을 퍼뜨리며 「YS죽이기」에 나선 것은 「적반하장」이며 이젠 후보를 바꿀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총재의 지지율 하락이 비자금폭로전 실패 등 자신의 잇따른 악수(惡手) 때문인데도 모든 책임을 김대통령에게 떠넘기려 한다는 것이다. 반이세력 일부에서는 최악의 경우 그동안 수집한 이총재의 경선자금 의혹 등 「이회창파일」을 꺼내 맞서야 한다는 강경론도 대두하고 있다. 이같은 인식아래 김수한(金守漢)국회의장 신상우(辛相佑) 서석재(徐錫宰) 김명윤(金命潤) 서청원(徐淸源)의원 등 민주계 중진 10여명은 이날 저녁 긴급회동, 반이회창 대책을 숙의했다. 또 서청원의원은 63빌딩에서 강용식(康容植) 김찬우(金燦于) 이재명(李在明) 이재오(李在五)의원 등과 만나 반이세력 결집방안을 논의했다. 강삼재(姜三載)사무총장이 사의를 표명한데 이어 이총재의 특보단중에서 범민주계로 분류되는 김정수(金正秀)정치자문 김덕(金悳)통일안보 서훈(徐勳)사회정책 김무성(金武星)정무특보와 김충근(金忠根)언론보좌역이 사표를 낸 것도 이회창 흔들기의 일환이다. 〈정연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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