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후보 선출/패자들 향후행로]일부 탈당 독자행보가능

  • 입력 1997년 7월 22일 08시 09분


李會昌(이회창)후보를 새 선장으로 선택한 「신한국호(號)」는 과연 이탈자나 「선상반란」 없이 12월 대선까지 순항할 수 있을까. 막판까지 강력한 「반(反) 이회창」 전선을 구축했던 李漢東(이한동) 李壽成(이수성) 金德龍(김덕룡) 李仁濟(이인제)후보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경선과정에서 「감정의 골」이 워낙 깊이 패고 불공정시비가 심했던 탓인지 21일 전당대회를 마친 신한국당 안팎에선 즉각 이런 의문들이 대두되는 분위기다. 한마디로 경선후유증에 대한 우려다. 전당대회 당일 1차 투표가 끝난 뒤에도 컴퓨터가 유효표와 무효표를 잘못 판독한 사실이 드러나 투표용지 전체에 대한 재검표에 들어가자 이한동 이인제후보 진영은 『세불리(勢不利)를 느낀 3위 이하의 후보 지지자들이 결선투표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기 위한 지연공작』이라며 당지도부와 이회창후보측에 극도의 불신을 표시했다. 朴燦鍾(박찬종)고문이 제기한 이회창후보의 「금품살포설」이나 이수성후보의 가계(家系)를 비난하는 흑색선전물 시비, 박찬종후보의 「사퇴외압설」 등 경선과정에서 후보들을 서로 등지게 만든 각종 의혹들도 아직 해명되지 않았다. 당총재인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이 전당대회 연설에서 『겸허한 승자, 깨끗이 승복하는 패자…모두가 승리자』라며 『경선과정에서의 감정대립과 갈등은 이 화합의 용광로에서 녹여버리자』고 어느 때보다 단합과 단결을 호소한 것도 그런 경선후유증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현재 경선후유증에 관한 관측은 여러 갈래로 대두된다. 경선과정에서 특히 친밀함을 과시했던 이한동 이수성후보가 자민련의 金鍾泌(김종필)총재와 함께 「보수대연합」을 추구할지 모른다는 관측이 나돈다. 후보를 전격 사퇴한 박찬종고문이 「독자행보」를 할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여전히 수그러지지 않는다. 더 나아가 경기출신인 이한동고문, 영남출신인 이수성고문, 호남권출신인 김덕룡의원 등이 지역과 보수를 고리로 한 「새판짜기」를 시도하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전망도 있다. 하지만 「반 이회창」진영이 「4인 연대」까지 구축했는데도 이회창후보에게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 때문에 4인 후보가 「딴 마음」을 먹을 여지는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분석이 더 강하다. 辛卿植(신경식)정무장관은 한 마디로 『(신한국당을) 나가서 누굴 밀어줄 사람이 있다면 모를까 그냥 비주류로 남아 자기 지분을 확보하려 할 것』이라고 잘라 말하면서 『金大中(김대중)씨를 밀겠느냐, 김종필씨를 밀겠느냐』고 반문했다. 신장관은 그러면서 설사 일부 후보가 탈당을 강행하더라도 동반탈당자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이회창후보 진영에서는 벌써부터 경선후유증을 의식한 듯 「대(大) 탕평책」을 제시하고 있다. 「반 이회창」 정서가 비교적 덜했고 이회창후보와의 연대설이 끊이지 않았던 김덕룡의원은 그런 「대탕평책」의 우선순위가 될 가능성이 크다. 박찬종고문의 경우 「금품살포설」로 이회창후보와 반목의 골이 깊어지긴 했지만 「대탕평책」의 수준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이회창호(號)」에 승선, 대선 항해의 동반자가 될지도 모른다. 최병렬후보 역시 마찬가지. 이회창후보 진영이 87, 92년 두 차례의 대선을 치러낸 최후보의 능력에 주목하지 않을 리 없고 최의원 역시 이회창후보에 대해 특별히 거부감이 없다. 하지만 이한동 이수성 이인제후보의 경우는 다를 것 같다. 이한동 이수성후보는 당내 비주류로 남으면서 정국의 추이를 지켜볼 가능성이 높다. 명실상부하게 차차기(次次期)주자로서의 위치를 굳힌 이인제후보는 5년 뒤를 내다보며 독자행보를 계속할 게 분명하다. 이회창후보와 「반 이회창」후보 진영의 반목이 탈당사태 등 극단적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더라도 당력이 과연 「이회창 체제」로 결집될 것인지에 대해 회의론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자칫 당력이 「이회창 체제」로 총결집되지 못할 경우 정권재창출은 낙관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이후보는 그동안 당안팎에서 무성했던 「포용력」의 극복이 당면 과제인 셈이다. 〈김창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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