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종사퇴/왜 물러났나]「金心」도「代心」도 외면…참담

  • 입력 1997년 7월 20일 09시 02분


신한국당의 朴燦鍾(박찬종)고문이 19일 마침내 대통령후보 경선출마를 포기한 것은 그가 제기한 李會昌(이회창)후보의 금품살포설 후유증이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속사정은 알 수 없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관련증거 제출이나 공개를 미룸으로써 그는 오히려 곤경에 처하게 됐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박고문의 정치적 자존심이 상처를 입은 때문인 것 같다. 대중적 지지도는 줄곧 경선후보 중 1,2위를 다퉈왔으면서도 당내 지지도는 바닥권인 현실에 그는 참담해 했다. 그는 『그럴 수가 있느냐』는 심경을 여러 차례 토로했다. 40대인 李仁濟(이인제)후보의 부상은 박고문에게 결정타였다. 그는 종종 『이번 대선이 나로서는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참신함마저 자신의 상품가치로서의 의미를 잃고 있다는 인식이 자신의 정치적 장래에 대한 짙은 불안을 그에게 안겨줬다. 외부의 종용을 받은 흔적도 엿보인다. 여권 핵심부가 경선후유증 예방을 위한 사전정지작업 차원에서 그에게 사퇴권유 메시지를 전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동안 박고문의 주공격대상은 이회창후보였다. 물론 대의원 지지율에서 부동의 선두를 지키고 있는 이후보가 공격대상으로 적합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金泳三(김영삼)대통령에 대한 원망이 이후보를 향해 표출됐다는 관측이 많다. 경선후보등록 무렵만해도 당내 경선후보 중 김대통령을 가장 비호하던 박고문의 태도돌변은 경선가도에서 아무런 「김심(金心)」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부터였다. 그가 김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시작했을 때부터 경선출마 포기는 예고된 셈이었다. 『작년초 총선을 앞두고 이후보와 비슷한 시기에 입당한 박고문이 그동안 「무대접」을 꾹 참고 백의종군한 것은 오로지 경선을 의식한 것이었다. 그러나 「김심」으로부터 외면당하자 그는 배신감을 느낀 것 같다』는 게 측근들의 얘기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경선이란 짐을 벗어버린 박고문은 한동안 훨씬 공격적이 될 가능성이 있다. 경선결과에 따라서는 신한국당은 자신이 머물 곳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의 행보가 여권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아직도 대중적 인기가 만만치 않은 박고문의 향후 행보는 연말 대선구도의 지형(地形)을 바꿀 수도 있는 요인임에 틀림없다. 그는 사실 홀로 있을 때 더 인기가 높았다. 냉정을 되찾으면 그도 「경선 이후」에 대비한 나름대로의 행보를 모색해나갈 것이다. 〈임채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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