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한국「회담 당사자」첫인정 의미]

  • 입력 1997년 6월 25일 20시 18분


4자회담 실무접촉의 진전여부가 궁금해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의 李根(이근)차석대사에게 전화를 걸면 그는 곧잘 『李秀赫(이수혁)씨에게 물어보시오』라며 퉁명스럽게 되쏜다. 이씨는 워싱턴주재 한국대사관 정무참사관으로 이근의 카운터파트다. 말하자면 말해줄 사람을 놔두고 왜 자기를 귀찮게 구느냐는 뜻이다. 남북한과 미국이 합의한 4자회담 예비회담 개최의 의미는 『이수혁씨에게 물어보라』는 이근의 말 속에 들어있다. 그의 말은 분단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북한이 한국을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논의의 당사자로 인정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런 일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북한은 여전히 한국이 1953년에 체결된 휴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직접적인 대화를 피했다. 뉴욕에서 실무접촉을 할 필요가 있을때도 반드시 미국을 통해서 연락을 해왔다. 4자회담은 원래 북한의 대미(對美)평화공세와 한국배제 주장에 대한 대응전략에서 출발한 것. 따라서 회담제의 1년2개월만에 예비회담 개최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것만으로도 韓美(한미) 양국은 이미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할 수도 있다. 전술면에서도 한미는 크게 손해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북한과 어떤 이면 거래를 했는지는 모르나 한미 양측 관계자들의 설명이 맞다면 식량문제를 비롯한 쟁점들에 있어서 한미는 기존입장을 비교적 잘 지켜냈다는 흔적들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대북(對北)식량지원은 4자회담 본회담에서 논의한다는 한미 양국의 입장을 북한이 충분히 이해했다』고 귀띔했다. 그렇다고 앞으로 4자회담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북한의 회담전술이 늘 그렇듯이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마다 새로운 소(小)단계를 무수히 설정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합의로 큰 일정은 잡혔지만 단계마다 결렬의 위기가 숨어있다. 당장 30일의 준고위급회담에서 예비회담 개최 발표문의 문구를 놓고서도 양측이 서로 틀어질 수가 있다. 준고위급회담이 잘 된다고 해도 예비회담 단계에서 식량문제는 물론 미국의 대북한 경제제재 같은 첨예한 현안들이 튀어나와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버릴 가능성도 있다. 〈워싱턴〓이재호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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